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희생된 피로 물든 뮌헨 올림픽 [역사&오늘]

9월 5일, '검은 9월단' 테러 사건 발생

1972년 독일(서독) 뮌헨 올림픽 광장에 '검은 9월단' 테러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올림픽 조기가 계양되어 있다. (출처: Magnussen, CC BY-SA 3.0 DE, 흑백사진(1972),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2년 9월 5일,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올림픽 무대는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 됐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인 '검은 9월단'이 서독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검은 9월단은 1970년 요르단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요르단 정부군 간의 충돌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서 탈퇴한 극단적인 무장 세력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요르단 정부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계획했다.

이날 새벽, 검은 9월단 대원 8명은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28명이 묵고 있는 숙소를 습격했다. 이들은 선수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은 채 이스라엘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포로 석방을 요구하며 독일 정부와 대치했다.

인질극은 긴장감 속에서 이어졌고, 결국 독일 경찰의 협상과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인질 전원과 테러범 대부분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올림픽 정신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은 올림픽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후 올림픽에서는 테러 방지를 위한 보안이 강화됐다. 또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해 테러와 보복 테러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검은 9월단 사건은 팔레스타인 문제, 아랍 세계의 분열, 냉전 시대의 국제 정치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또한 올림픽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다. 검은 9월단 테러 사건은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평화를 꿈꾸는 인류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이후 세계 각국은 대테러전문 특수부대를 양성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