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영토 포기안' 두고 우크라 내분…전쟁 장기화탓 힘얻는 현실론

AFP 22일 우크라 주민 심층 인터뷰…격전지 도네츠크선 '전쟁보다 평화'
한발 뺀 젤렌스키 "국민이 원한다면"…'억지력 확보'가 근본이란 지적도

우크라이나 구조대원들이 9일(현지시간) 동부 도네츠크주 코스티안티니우카의 슈퍼마켓에 가해진 러시아군의 포격에 숨진 희생자를 이송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이날 슈퍼마켓을 노린 포격으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2024.08.09 ⓒ AFP=뉴스1 ⓒ News1 강민경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러시아와의 종전협정 체결을 위해 러시아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일부를 포기하는 방안을 두고 우크라이나가 내분에 휩싸였다고 AFP 통신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개전 초기에는 러시아의 점령지를 다시 수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었지만 전쟁이 2년 6개월에 접어들면서 영토를 일부 버리더라도 전쟁을 끝내는 게 낫다는 현실론이 점차 힘을 얻는 모습이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 주민 올가 보로디치(64·여)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동부 영토 일부를 내주더라도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의 고향인 도네츠크 도시 포크로우스크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현재 러시아군은 포크로우스크 동쪽 20㎞까지 진격한 상태다.

도네츠크 최전선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은 설사 자신들이 러시아 치하에 살더라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낫다며 모든 것을 체념했다고 AFP는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여론조사 지표로도 확인됐다. 키이우 국제사회연구소(KISS)가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전쟁 종식을 위해 영토를 양보할 수 있다는 응답은 지난 2월 26%에서 5월에는 32%로 증가했다.

향후 종전협상이 진행될 경우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와 맞바꾸려는 복안으로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6일부로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로 진격하는 본토 역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두고 국제전략연구소의 프란츠-스테판 가디 연구원은 "장비의 한계, 인력의 한계, 물자의 한계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달성할 수 있는 군사적 목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보름간 서울(605㎢)보다 넓은 1263㎢ 쿠르스크 일대에서 장악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러시아군의 저항에 직면해 진격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게다가 동부 전선에 있던 정예 부대가 쿠르스크 진격전에 대거 투입되면서 우크라이나가 전선을 무리하게 늘려 러시아에 도네츠크 점령지를 너무 쉽게 내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14년 뺏긴 크름반도를 포함해 러시아가 자국 영토를 모두 온전하게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지난달 30일 AFP·일간지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선 "영토 포기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원해야 한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항전을 거듭해 영토를 모두 수복해야 한다는 '이상론'은 여전히 우세하다. 이날 도네츠크 광산 마을 노보흐로디프카에 사는 주민 이리나 체레드니첸코(62·여)는 AFP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피를 흘렸겠느냐"며 "이제 와서 영토를 포기하라고 협상 테이블에 앉으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기회에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편이 향후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 낼 근본적인 해법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체레드니첸코는 "블라디미르 푸틴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늘 영토를 주더라도 "내일은 다시 힘을 모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 소속 마리 뒤물랭 전 프랑스 외교관도 AFP에 "영토 양보가 곧 평화로 이어질 거란 생각은 너무 단순하다. 어떤 사람들은 영토 양보가 전쟁 종식을 위해선 언젠가는 필요할 거란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곧 전쟁을 종결하는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며 "러시아가 다시는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지력을 갖추는 게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