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본토 공격 장기화에 불안한 우크라인들…"동부는 누가 막냐"

2주 넘긴 쿠르스크 작전…우크라 진격 속도 느려져
러는 역으로 동부전선 공격 집중…주민들 공포 확산

16일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이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 수자에서 파괴된 러시아 군 탱크가 보인다. 2024.08.17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쿠르스크 기습 공격이 2주 넘게 이어지며 장기화하자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이번 작전과 관련해 상반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름 반격 작전이 수포가 된 이후 계속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군이 드디어 유의미한 전과를 보인다는 안도감과 함께 러시아군의 격렬한 공세가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방어가 허술해졌다는 불안감이 공존하는 모양새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공세를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이번 작전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보여주는 청사진 역시 불분명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쿠르스크 침공이 3주째로 접어들고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 대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6일 미국과 독일 등에서 지원받은 전차 등 무기를 동원해 러시아 남서부 접경지인 쿠르스크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20일 기준 93개 주거지를 포함해 서울의 2배가 넘는 면적인 1263㎢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허를 찔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장담하면서도 전세를 역전하지 못했고 부랴부랴 남부전선의 드니프로와 자포리자 등에서 병력 일부를 쿠르스크로 재배치해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14일 (현지시간)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건물에 걸린 러시아 국기를 끌어 내리고 있다. 2024.08.16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우크라이나군은 이후 미국산 무기까지 사용해 쿠르스크 내 교량들을 폭파시키며 러시아군의 보급 경로를 차단해 영토 점령 굳히기에 들어갔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은 뒤늦게 도착한 러시아의 지원군에 막혀 속도가 떨어지는 추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장악하고 있는 영토 주변에서 미미한 전과만 내며 진격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쿠르스크 방어에 나서면서도 역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 공격을 집중하며 토레츠크와 포크로우스크를 향해 공세를 펼치고 있다.

포크로우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이 동부전선 병참기지로 사용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군인 이곳을 점령해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방어 능력을 떨어트릴 심산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심정도 복잡해지고 있다.

WP는 쿠르스크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군이 빠르게 진격하고 수백 명의 러시아군 포로를 생포하면서 지난 1년간 전선에서 좋은 소식이 없던 우크라이나의 사기가 진작됐다"라고 전했다.

현지 언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의 편집장 세브길 무사예바는 "최전방의 소식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다"라며 "사람들은 이번 (쿠르스크) 작전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이는 이미 3년째 전면전을 치르는 국가에는 중요한 일이다"라고 짚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인들이 겪어온 전쟁의 공포를 러시아인들에 되갚아주는 것이 통쾌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현지 주민 류보우 예메츠(66)는 "(나라가) 점령된 상황에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러시아인들도) 경험하고 이해하게 해야 한다"라며 "러시아인들이 상황을 보고 다시 생각해 들고 일어나지 않겠냐"라고 WP에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의 도시 포크로우스크에서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인근 러시아군을 향해 프랑스제 자주포 '카이사르'를 발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024.08.1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다만 쿠르스크 침공이 장기화하고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이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에 대한 불안감도 번지고 있다.

포크로우스크 주민 라이사 마카로바(77)는 "우리는 군이 포크로우스크를 방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으로 배치되고 있다"라며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여기서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푸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쿠르스크 점령지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삼고 향후 평화 협정에서 제시할 카드로 사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러시아에 비해 병력도 무기도 부족한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상황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키이우 주민 빅토라이 칼라쉬닉(34)은 "한편으로는 (쿠르스크 침공이) 멋지고 좋은 일이며 우리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다"라면서도 "동시에 도네츠크와 하르키우에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 그곳에 지원군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우려했다.

jaeha6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