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총리가 권도형 초기 투자자…"암호화폐 지갑 까봐야"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몬테네그로 현직 총리가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의 초창기 투자자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총리가 테라·루나를 정확히 언제 매도했는지, 차익은 얼마나 실현했는지 함구하자 '총리의 암호화폐 지갑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격한 반응도 터져 나왔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4월 권 씨를 상대로 한 민사재판이 열리고 있는 뉴욕 남부연방법원에 제출한 테라폼랩스 관련 문건을 입수해 밀로코 스파이치 총리가 2018년 4월부터 2021년 7월까지 테라폼랩스에 투자한 81명의 1차 투자자 명단에서 16번째에 이름을 올렸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파이치 총리는 2018년 4월 17일 개인 자격으로 75만개의 루나 코인을 1개당 10센트에 구매했다. 테라와 루나는 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자처했지만, 2022년 5월 폭락해 SEC 추산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400억 달러(약 55조 원) 상당의 피해를 입혔다.

스파이치 총리는 자신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총선 TV토론에서 "2018년 근무했던 회사가 한 남성에게 7만 5000 달러를 사기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7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싱가포르 투자회사인 다스 캐피털 SG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SEC가 법원에 제출한 명단에는 이 회사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루나는 2022년 4월 1개당 119달러(약 16만 원)로 정점을 찍고 1달 만에 수직 낙하해 0달러에 수렴했다. 스파이치 총리가 루나 코인 75만개를 최고가에 팔았다면 이론상 8900만 달러(약 1230억 원) 상당의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비예스티는 스파이치 총리 측에 폭락 사태 직전 총리가 루나 코인을 얼마나 보유했는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스파이치 총리가 루나 폭락으로 막대한 돈을 잃었다고 불평한 바 있다고 비예스티에 전했다. 금융 전문가는 그가 일부 코인은 폭락 전 매도하고 일부는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매도를 했다면 거주지인 몬테네그로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야 했는데 그런 내역이 없다. 반대로 코인을 보유 중이라면 몬테네그로 부패방지청(ASK)에 자진 신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스파이치 총리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비트코인, 이더리움, 바이낸스, 테더 등의 코인만 신고했고, 2023년 8월부터는 관련 내역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스파이치 총리는 권 씨와도 개인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권 씨가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던 2022년 말, 총리는 그가 숨어지내던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소재 아파트를 찾았다. 이러한 사실이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알려지자 스파이치 총리는 당시 TV 토론을 통해 '암호화폐 폭락이 사기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낸 성명에선 베오그라드에서 권 씨와 한국인 투자자 보상 대책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피 행각을 벌이던 권 씨가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코스타리카 국적의 위조 여권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된 데 대해선 자신이 당국에 정보를 흘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스파이치 총리의 최측근인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장관은 이날 현지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파이치 총리는 다른 수백만 명과 마찬가지로 권도형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 URA는 "SEC의 자료로 스파이치 총리와 관련한 의혹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며 "즉각 사임하고 관할 당국은 이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금융 전문가는 비예스티에 "총리의 암호화폐 지갑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며 이를 공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