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자국 교황대사 초치…교황 '백기투항' 발언에 항의

"교황이 무력행사 합법화 해서야"…"국제법 무시하는 발언 자제" 요구
젤렌스키 "종교인 개입해선 안돼"…나토 사무총장 "항복시 모두가 위험"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주일 삼종기도를 주재하고 있다. 2023.3.10.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김예슬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백기 투항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우크라이나가 자국 교황대사를 초치해 정식으로 항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교분리'를 거론하며 교황을 에둘러 비판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11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이날 우크라이나 주재 교황대사인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에게 "교황이 무력행사를 합법화하고 국제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성명에서 "교황이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즉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신호를 전세계에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다른 국가들처럼 우크라이나도 평화를 추구하지만, 평화는 공정해야 한다"며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 공식(Peace Formula)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내놓은 평화 공식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러시아군 완전 철수 △점령 영토 반환 △우크라이나 주권 보장 등을 담고 있다. 반환 영토에는 개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은 물론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도 포함된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일 공개된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국민을 생각하며 백기를 들 용기를 갖고 협상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협상은 용기가 필요한 단어"라며 "자신이 패배하고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땐 협상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교황이 협상 필요성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백기'나 '패배'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기를 들 주체로 우크라이나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와 관련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10일) 밤 영상 연설에서 "종교인들은 기도와 토론, 행동으로 우리를 지원한다"며 "이것이 바로 국민과 함께하는 교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을 겨냥해 "살고 싶은 사람과 죽이고 싶은 사람 사이의 '가상 중재'에 종교인이 개입해선 안 된다"고 직격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도 교황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로이터에 평화 협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대화를 통한 평화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원한다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백기 투항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비극이 된다"며 "우크라이나의 항복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경우 "우리 모두 위험해진다"며 "모스크바가 군사력을 사용하고 수천명을 죽이면서 다른 나라를 침공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악수하는 모습. 2023.04.20.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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