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우크라 파병' 언급에 나토 '발칵'…"전략적 모호성 전략 실패"
"우크라 상황 얼마나 안 좋은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내"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문제와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차원에서 파병을 '암시'하는 수준을 벗어나 동맹국들 간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해 혼란만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7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파병 등) 어떤 것도 배제돼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단계에서는 지상군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 (동맹국들 간에)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마크롱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군대 파견을 검토하고 있는지, 서방 군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왜 전쟁 2년 뒤인 현시점에 파견을 고려하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싶다고만 설명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된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직접적으로 군사 개입을 할지와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전략으로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과 대만의 독립 두 가지에서 억지력을 유지해 왔다.
마크롱 대통령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파병'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세는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안 패키지 처리가 늦어지고, 최근 우크라이나가 전선에서 러시아에 다소 밀린 데다 러시아가 올해 안에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덜란드 군 최고 장교인 오노 아이켈스하임 장군은 로이터통신에 "마크롱은 푸틴에게 어떤 선택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직접 파병)은 가장 먼 선택이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아직은 그렇게 할 의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코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도 "이런 시기에는 정치적 리더십, 야망,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어제 언급된 계획은 고려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방의 파병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이 푸틴 대통령을 억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를 나토 등 동맹국들이 수면 아래에서 논의했을지라도, 국가 지도자가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은 "고갈된 우크라이나 군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제공하는 것을 공동으로 검토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개적 논의가 있었다는 점이 처음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 동유럽 외교관은 서방의 군대 파견에 대한 공개 논의가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이것이 테이블 위에서 논의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서방 동맹국 간 갈등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나토 회원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즉시 진화에 나섰다.
미국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승리로 가는 길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스스로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탄약 등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어떤 유럽 국가나 나토 회원국도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된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고,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 배치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로이터는 "마크롱 대통령은 일부 국가가 2년 전 '침낭과 헬멧'만 보내기를 원했다 점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꺼렸던 독일을 자극했다"며 "독일 관리들은 최근 몇 주 동안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군사 지원을 보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고 전했다.
한 서방 관리는 "마크롱이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서 일부를 덜컥거리게 하고 일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유럽연합(EU) 외교관도 "마크롱의 발언은 신뢰성을 희생한 동맹국 간의 불협화음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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