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2년]신냉전과 다극질서 가속도…트럼프 재집권한다면

러시아 동진 막으려는 나토, 냉전 시기와 유사
러, 中과 '한계 없는 우정'…美 5대 적, 우크라 전쟁 계기로 결집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 2019.12.05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자국의 주권을 지킬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책임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이 발언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2차 대전 그리고 냉전 이후 세워진 미국 중심의 단극적 국제 질서를 뒤흔들려는 수정주의 국가의 공세적 시도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글로벌 지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은 중국과 러시아 등 수정주의 국가가 공격적으로 부상하게 되는 배경 중 하나가 됐다. 이와 맞물려 이미 전세계 주요국들이 글로벌 혹은 지역적 차원에서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같은 전 세계적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고, 향후 지정학적 재편이 속도를 더욱 내게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전쟁은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유럽에 닻을 내리는 미국과 전 세계의 더 큰 질서를 뒤집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스토니아에서 휘날리고 있는 나토 깃발. 2023.04.30.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러시아 동진 막으려는 나토, 냉전 시기와 유사

우크라이나로 확장되려는 러시아와 이 같은 시도를 막으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의 단합은 흡사 냉전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코리 샤케 대외·국방정책 국장은 미국외교협회(CFR)가 진행한 대담에서 "우리는 아직도 냉전 종식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며 "러시아의 권력이 다른 사람의 주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될 때 이를 제한하려는 서방 국가들의 노력이 부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호주 국립대학교 전략 및 국방 연구센터 회장인 폴 딥 명예교수도 "소련 붕괴 이후 낙관적인 예측과는 달리, 세계는 민주주의를 더 폭넓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두 개의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근본적으로 기존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거부한다"며 "서방이 그들에게 국제 질서를 강요했고, 이제는 그 국제 질서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작성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동맹을 맺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10.18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러, 中과 '한계 없는 우정' 과시…美 5대 적, 우크라 전쟁 계기로 결집

또한 러시아는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손을 맞잡으며 '한계 없는 우정'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2월4일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새로운 국가 간 관계는 냉전 시대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보다 우월하다"며 "양국의 우호에는 한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부보좌관 및 국가 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의 조합도 미국과 동등한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과 일본이 소련과 동맹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라며 러·중과 서방 동맹국 간 대결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나머지 4개 대상(이란·중국·북한·테러리즘)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라파엘 코헨 랜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미국에게는 5대 적이 있을 수 있지만, 오직 한 번에 지구의 한 지역에서 한 명의 적과 하나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며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미국의 적들은 점점 더 상호 연결되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 중동 연구소의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반미주의는 중국, 이란, 러시아를 하나로 묶는 하나의 사상"이라고 말했고, 미국 기업연구소의 마이클 마자 연구원도 "러시아, 이란, 중국은 궁극적으로 세계 질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질서에 반대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공격 속에서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24.01.30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전 세계적 국방비 증가…트럼프 당선 시 상황 악화

문제는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감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는 지난 13일 "전 세계가 매우 변동성이 큰 안보 환경에 진입했다"며 지난해 전 세계 국가들이 국방비로 쓴 금액이 2조2000억 달러(약 2930조 원)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고 밝혔다.

IISS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대응 등의 영향으로 세계 국방비 지출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그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우선 나토는 1300㎞ 넘는 나토 동맹국 국경 근처에 진군하는 러시아군에 대응하기 위해 동유럽 병력 배치를 늘려야 하고, 전투기 등을 새롭게 배치해야 한다.

또 '우크라이나 패배 시나리오'의 여파는 유럽뿐만이 아니라 대만 등 아시아로도 이어진다. 중국의 군사력 억제를 위해 아시아에 배치된 미 전투기나 주력 무기가 대거 유럽 쪽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필두로 한 수정주의 진영에 맞서려면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을 통해 재집권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문제에서 발을 뺄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부담하거나, 러시아가 나토 동맹을 공격해도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가 재집권한다면 미국의 '나토 탈퇴' 압박은 다시 높아지고 이와 맞물려 다극적 질서로의 전환 과정에서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