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르완다 송환에 英보수당 휘청…강경파 휘둘리다 총선 대패할듯
4000억 르완다 선납에도 송환 난민 0명…유럽 개입에 브렉시트 강경파 분노
보수당 하원 60명 총리표 법안 공개반대…신년 여론조사 "1997년 패배 재현"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도버해협을 건너온 난민 신청자를 모두 르완다로 돌려보내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정책에 집권 보수당 내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이 르완다는 난민에게 안전한 국가가 아니라며 관련 정책에 제동을 걸자 총리가 이를 우회하는 이른바 '르완다 안전법'을 발의했는데, 당내 우익 강경파를 중심으로 법안이 너무 무르다는 비판이 속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르완다 안전법은 지난달 하원을 통과했지만, 총리의 핵심 정책이 좌초될 경우 정권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한 결과로 상원 심의 과정에서 또다시 당 내분이 표면화될 수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시각이다.
총리 리더십이 강경파에 흔들리고 당이 두쪽 나자 보수당 지지층은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올해 하반기 열릴 총선에서 보수당이 14년 만에 노동당에 정권을 내주는 것은 물론 1997년 총선과 맞먹는 최악의 참패를 당할 거란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유럽인권재판소 첫 난민 송환기 멈춰…英대법도 "다수 국제조약 위배" 제동
북아프리카·중동에서 출발한 밀입국자로 골머리를 앓던 영국은 2022년 4월 자국에 도착한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송환하는 대신 체류비를 지원하는 합의를 르완다 정부와 체결했다. 같은 해 10월 취임한 수낵 총리는 반(反)이민 기조를 이어갔고 르완다에 난민 수용 대가로 지금까지 모두 2억4000만파운드(약 4000억원)를 선납했다.
그러나 르완다로 송환된 인원은 0명에 불과하다. 2022년 6월 난민 신청자들을 태운 첫번째 송환기를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영국 법원의 관련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송환 정책을 집행해선 안 된다'며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도 재판부 5인 전원일치로 "르완다를 난민 신청자들이 가기 안전한 제3국으로 간주할 수 없다"며 송환 집행은 "유럽인권조약 등 다수의 국제 조약을 위배하는 행위"라고 판시했다.
실제로 1951년 채택된 유엔 난민협약에 따라 당사국들은 분쟁이나 박해를 피해 탈출해 자국에 도달한 민간인을 보호해야 하며 이들을 강제로 추방하거나 제3국으로 송환할 수 없다. 한국과 영국을 포함해 약 150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영국 등 유럽국들이 마련한 유럽인권조약도 난민 추방 및 송환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르완다 송환 집행이 늦어지면서 영국 정부는 난민 신청자들의 국내 임시 체류에 연간 30억파운드(약 5조원)를 고스란히 지불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숙박비용을 줄이기 위해 난민 신청자들을 바지선에 수용한 배경이다. 대법원 판결에도 수낵 총리는 정책을 철회하는 대신 꼼수를 택했다. 그게 바로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르완다 안전법안이다.
◇총리 '르완다 안전법' 강경파 못달래…하원 60명 '유럽 불개입' 법안으로 응수
르완다 안전법안은 르완다를 난민 체류가 가능한 '안전국'으로 규정하고 르완다에 머무는 난민 신청자들이 향후 자격 심사에 탈락하더라도 영국 이외의 다른 국가로 추방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법안 내용이 공개되자 보수당 내 강경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ECHR을 배척할 방법이 빠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총리의 측근이었던 로버트 젠릭 보수당 하원의원은 난민 송환 정책이 크게 후퇴했다며 이민부 장관직을 내려놨다. 보수당 하원의원 60명은 수낵 총리의 르완다 안전법안에 대항해 난민 신청자의 영국 법원 항소와 ECHR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는 초강경 수정법안을 발의했다. 이들 상당수는 국경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이들이다.
총리표 르완다 안전법안은 지난달 17일 하원 표결에서 찬성 320표·반대 276표로 가까스로 가결됐다. 당초 60표 이상으로 예상됐던 보수당 내 '반란표'가 11표에 그치면서다. 그럼에도 갈등이 봉합됐다고 보긴 어렵다. 표결 직전 이언 던컨 스미스 전 보수당 대표 등 당내 중진들이 '노동당에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줘선 안된다'며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결과였다. 보수당 부의장 2명이 반란표를 행사하겠다며 동반 사임하는 등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지난달 23일에는 강경 우익으로 분류되는 사이먼 클라크 보수당 하원의원이 현지 일간 텔레그래프에 '수낵 총리 리더십이 민심 회복의 걸림돌'이라며 퇴진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르완다와 맺은 난민 송환 협약의 비준 자체를 아예 연기하자는 결의안이 같은달 22일 영국 상원에서 통과되면서 수낵 총리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르완다 안전법안은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는데 상원이 협약 자체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만큼 통과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총선서 14년만에 정권교체…보수당 216석 차이로 노동당에 대패"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총선에서 2010년 총선 이후 14년 만에 정권이 바뀔 거란 시나리오는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는 지난달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만4110명을 대상으로 '당장 내일 총선이 실시된다면 어느 당에 투표할 것인가'를 물었는데, 제1야당인 노동당이 2019년 총선보다 183석 늘어난 385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수당은 2019년 총선보다 196석이 줄어든 169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보수당 역사상 최악의 총선인 1997년 총선(165석)에 맞먹는 결과다. 지난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던 잉글랜드 중·북부 노동당 강세지역 '레드월' 대부분을 잃고,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을 비롯해 현직 내각 장관 11명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고브는 "의석 과반을 점한 정당은 그 다음 총선에서 패배한 전례가 없다"며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이 최소 10년은 집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보수당 대패의 원인은 노동당의 약진이 아닌 보수 분열에 있다고 분석했다. 잉글랜드·웨일스 선거구에서 노동당 예상 득표율은 2019년에 비해 평균 4% 상승한 반면, 보수당은 18% 하락했다. 보수당을 이탈한 응답자의 80%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한 유권자였다.
seongs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