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원유 75%가 보험없이 운송…가격상한제는 유명무실했다

서방 선박업체들은 운송 꺼린 반면 '암흑 선단' 구축 성공
올해 원유 수입 20조원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

미국 루이지애나주 해안의 한 유조선.ⓒ로이터=News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서방이 러시아의 원유 수출가를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제한하기 위해 택했던 가격상한제가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러시아 원유 75%가 이에 아랑곳없이 운송됐는데, 이른바 '암흑 선단'(dark fleet) 유조선을 구축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해운 및 보험 기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8월 러시아의 모든 해상 원유 운송의 약 4분의 3이 서방 등 보험 기업들의 보험 없이 이뤄졌다. 보험 기업들은 러시아를 제재하려는 주요7개국(G7)이 배럴당 60달러의 유가 상한제를 시행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다.

화물 분석 회사인 케이플러(Kpler)와 보험 회사들의 자료에 따르면, 이는 올 봄의 약 50%보다 증가한 것이다. FT는 "이것은 러시아가 상한제를 피하는데 더욱 능숙해지고 있다는 것과, 더 많은 석유를 국제 시장 가격에 가깝게 판매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키이우 경제대학(KSE)은 지난 7월 이후 원유 가격이 꾸준히 상승한 것과 러시아가 석유상한제를 피할 수 있게 된 덕에 러시아의 2023년 원유 수출로 인한 수입이 예년보다 최소 150억 달러(약 20조475억원)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초 지난해 12월 G7의 가격상한제가 처음 실시됐을 때 러시아는 국제유가보다 한참 아래인 배럴당 40달러 정도로 가격을 할인해야 했다. 유럽으로 향하던 수백만 배럴의 물량을 팔 새로운 고객을 개척하고 서방 해운 서비스를 여전히 이용하려면 할인이 필요했다. KSE 학자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가격상한제 등으로 인해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의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이 1000억 달러 줄어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방 기업들 선박회사는 60달러 이하로 팔았다는 증명을 받더라도 귀찮은 상황이 생길까봐 운송을 꺼리면서 운송이 줄어든 반면 러시아는 암흑 선단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암흑 선단은 '그림자함대' '유령 함대'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란과 러시아 석유를 운반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노후되고 소유자도 알려지지 않은 무보험 유조선 선박들을 해운업계에서 부르는 용어다.

지난 5월 러시아는 서방 및 비서방 보험사의 보험에 든 선박을 통해 하루 약 300만 배럴의 우랄 및 ESPO 원유를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8월에 하루 약 250만 배럴로 떨어졌으며, 특히 서방 보험 선박의 운송은 62만6000배럴에 불과해 5월에 운송한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FT는 러시아의 석유 부문은 국내 정제 연료 시장의 부족과 전반적인 수출량 감소 등 몇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여전히 가격상한제를 피해 많은 석유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앞서 21일에 발표된 러시아의 휘발유·경유 수출 금지 조치는 일시적으로 러시아의 수입에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물량이 적어지면서 가격이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