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손가락, 하나씩 잘라내고파"…'러 무차별 포격'이 만든 증오

동부 돈바스 최대 격전지가 된 '바흐무트' 연일 '무차별 포격' 이어져
포격으로 지하 생활을 하고 있는 바흐무트 시민들, '반러' 감정 고조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시베르스크 외곽의 한 도로에 러시아 로켓탄이 박혀 있다. 2022.07.08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1월의 나는 두손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투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의 모든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잘라내고 싶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벌인 행동으로 죽었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시에 거주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스쿠반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쟁 전까지만 해도 푸틴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8일 채소밭에서 양파를 캐던 중 러시아군 공격으로 다친 뒤에 그는 더이상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인구 7만2000명 규모의 바흐무트시는 현재 동부 돈바스 전투의 최전방이 되었다. 러시아군은 한달전 동부 전투의 주요 전선인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를 점령한 이래 이 지역에서 48㎞가량 떨어진 바흐무트를 향해 진격해 집중 공세를 하고 있다. 특히 시베르스크와 바흐무트를 연결하는 32㎞ 구간은 양측의 최대 격전지로 포격과 화재, 그로 인해 검은 연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가까스로 이 구간에서 방어선을 잘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포병대 대장은 "우리는 이곳에서 러시아군을 막았고 그들은 진격할 수 없다"며 "그들은 여전히 화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기력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많은 양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더 나은 정밀도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외곽의 한 도로에 연기가 자욱하다. 2022.07.30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이달초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수복'을 목표로 헤르손을 중심으로 반격을 시도하고 있지만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 포격은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무차별 포격을 가해 주민 거주가 불가능하도록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

세르히 체레바티 우크라이나 동부 합동군사령부 대령은 "그들은 특별히 재능이 있는 지휘관이나 현대 전술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연속된 포격으로 억누르려 한다"며 "이들은 단지 오래된 구소련의 매뉴얼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해당 매뉴얼에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이 바로 포격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바흐무트 북쪽 끝에 위치한 작은 마을 시베르스크에는 온전한 구조물이 거의 없다. 마을에 남은 사람 대부분은 지하 방공호에 숨어 지내고 있다. 소들만 거리를 배회할 뿐이다. 한 병원 건물 지하에서 수십명의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발레리 부코는 "우리는 현재 살아있지만 러시아군은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며 "도시에 남은 대부분 사람은 지하실에 숨어 있기 때문에 거리에서 그들을 볼 순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방식, 지하에서의 삶"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시베르스크에 전소된 건물들 앞에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가고 있다. 2022.07.22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바흐무트에 남아 부상자를 치료하는 안드로슈추크 의사는 러시아가 주택가를 공격하기 위해 집속탄을 사용하는 것은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번주 병원을 방문한 군인과 민간인 등 거의 모든 사상자는 파편에 따른 상처와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스쿠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부상 정도는 제각각이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진 이들도 있었다고 의사는 전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에 따른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 발생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당국은 바흐무트 등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 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리나 이바누슈키나 바흐무트시 정부 관료는 "약 2만명의 주민이 현재 도시에 남아있다"며 "이곳에서 이번 가을과 겨울을 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기에 모든 사람이 도시를 떠나도록 적극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방이 되지 않을 것이고 지속되는 전투에 전기, 식수, 통신 등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흐무트를 떠나기 위해 미니버스에 올라탄 마리아 페트리샤나(72)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전혀 모르겠다"며 "어디든지 상관없다. 여기서 가능한 한 멀리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범에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우리 아파트 2층에 난 구멍은 내 키보다 크다"고 말했다.

다만 소수 민족을 중심으로 바흐무트가 러시아에 점령되길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시 당국에 따르면 일부는 러시아군과 적극 협력한 혐의로 구금됐다. 익명의 한 시민은 "모든 사람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들은 진짜 악당들이다. 아침에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복지수당을 받고 저녁에는 러시아군의 화력을 도시로 유도한다"고 힐난했다.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시에서 러시아군 포격을 받은 건물이 완전 붕괴되어 있다. 2022.07.30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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