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방문 찰스 3세, 원주민 의원에게 "우리의 왕 아냐" 고함 들어

소프 상원의원 "훔친 땅 돌려달라" 했다가 리셉션장 쫓겨나

21일(현지시간) 영국 찰스 3세에게 "우리의 왕이 아니다"고 외치다가 홀 밖으로 끌려 나가는 리디아 소프 호주 상원의원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호주를 방문한 영국의 찰스 3세 국왕이 호주 원주민 상원의원으로부터 "우리의 왕이 아니다"는 야유를 들었다. 이 상원의원은 영국과 호주 원주민 사이에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문제 삼으며 "우리 땅을 돌려달라. 훔친 것을 돌려달라"고 외쳤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날 호주 의회에서 연설했다. 하지만 홀 뒤쪽에서 원주민 상원의원이자 원주민 권리 운동가인 리디아 소프가 “당신은 우리의 왕이 아니다”면서 이같이 외쳤다.

소프는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면서 "우리의 뼈, 우리의 머리뼈, 우리의 아기, 우리의 사람들, 우리의 땅을 당신은 파괴했다"고 소리쳤다. 경비원들은 찰스 국왕에게 주먹을 흔드는 소프를 문 쪽으로 밀어붙이고는 홀 밖으로 밀어냈다. 홀 밖에서도 그의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국왕은 무대에서 무표정하게 이를 지켜보다가 아내인 카밀라 여왕과 함께 몇 분 후 리셉션장을 떠났다.

NYT는 이 해프닝이 "2022년 국왕이 된 찰스가 처음으로 호주를 방문한 데 대한 충격적인 방해였으며, 영국 군주가 호주를 얼마나 오래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오랜 의문이 이를 통해 다시 제기되었다"고 했다.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인 호주에는 여러 차례 공화제로의 전환 시도가 있었다. 1999년 공화제 전환 운동이 벌어져 국민투표가 이뤄졌는데 국민 과반은 공화제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아 무산됐다. 그 후 잠잠하다가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죽음으로 다시 공화제 운동이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1999년 공화제 캠페인을 이끈 전 호주 총리 맬컴 턴불은 "찰스에 대한 개인적인 적대감은 전혀 없다"면서 "사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그렇듯이 호주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그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말했다.

턴불 전 총리는 엘리자베스에서 찰스로 왕권이 바뀐 것이 공화국 문제를 재검토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도 했다. 그는 "공화제는 실현 가능하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공화제라면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주의 운동이 국가 원수를 선출하는 방법을 둘러싼 오랜 분열과 호주 헌법을 개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의무 투표 요건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찰스 국왕 면전에서 소리친 소프 의원은 저명한 원주민 운동가 가문 출신이며 오랫동안 원주민 권리와 영국 군주제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왔다. 2022년 연방상원 의원으로 재선된 후 선서할 때 그는 불끈 주먹 쥔 손을 머리 위로 들었고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라고 비아냥거렸다.

버킹엄 궁전은 야유 사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익명을 조건으로 궁전의 한 관리가 "폐하께서는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나온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과 멈춰서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환영의 따뜻함과 규모는 정말 대단했다"고 말했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