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프라보워의 인니, 어디로 향할까[딥포커스]
당장은 '조코위 정책' 수용…'동행'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
CFR "프라보워, 스트롱맨형 지도자 지향…오랜 습관 안 사라져"
- 조소영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여전히 인기가 높은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으로부터 직·간접적 지지를 받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 없이' 승리한 것이 확실시되면서 오는 10월 취임 이후로 펼쳐질 '프라보워의 인도네시아'에 눈길이 쏠린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는 석탄, 팜유, 니켈의 최대 생산국 중 하나로, 양대 패권으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전략적 중요성이 큰 지역으로 꼽힌다.
당장 프라보워 장관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은 조코위 대통령의 정책을 그가 이어나가길 바라는 분위기이고, 실제로 프라보워 장관도 그런 움직임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두 차례 대선에 나와 두 차례 모두 조코위 대통령에게 패한 프라보워 장관은 이번 세 번째 대선 도전 땐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기브란 라카부밍 라카)을 러닝메이트(부통령)로 삼으며 정적(政敵)과 손을 잡았다.
이날 CFR(미국외교협회)은 '프라보워의 인니'에 대해 "조코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이어받아 인도네시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외국인 투자 환경을 합리화하려고 노력하며, 극빈층을 돕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도네시아 산림을 크게 벌채하는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돼 있고 미중 균형 정책에서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중국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방어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쪽으로 다소 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문제는 이런 '동행'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다. 일단 새 대통령이 될 프라보워 장관과 현 대통령인 조코위 대통령은 정치적 결이 완전히 다르다.
조코위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다. 이에 앞서 30여 년의 수하르토 군부 통치 시대, 또 대통령 직선제 도입에 따라 선출됐으나 군부 출신이었던 밤방 유도요노 시대가 있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맨손으로 가구 사업을 성공시킨 조코위 대통령은 친(親)서민정책을 펼치며 2005년 고향인 수라카르타에서 시장직을 지내고, 2012년 수도 자카르타를 관장하는 자카르타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유력 대권주자로까지 섰다.
반면 프라보워 장관의 경우, 군부 엘리트 출신으로서 앞서 언급된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전 사위다. 특히 프라보워 장관은 수하르토 정권 당시 군에 복무하면서 민주화 운동가들을 납치하고, 파푸아와 동티모르에서 반군을 잔인하게 탄압하는 등 각종 인권침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물론 그는 이런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부통령이 될 장남을 통해 '프라보워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모양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또 배후에서의 영향력은 현직 대통령의 권한에 비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소속 정치학자 리암 개먼은 로이터 통신에 "프라보워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한 (두 라이벌의 동맹 관계는) 유지될 것"이라며 "다만 그것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경우, 조코위는 빠르게 소외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프라보워 장관은 과거 인도네시아에 대한 네덜란드의 통치가 끝난 뒤, 국가적 혼란기에 안정을 가져온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기반을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조코위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을 부통령 후보로 세운 과정 자체가 이미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신호라는 지적이다.
당초 조코위 대통령의 아들 기브란 수라카르타시 시장은 36세로, 대통령과 부통령의 피선거권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제한한 선거법이 적용돼 대선 출마를 할 수 없었지만, 조코위 대통령의 매제인 안와르 우스만 헌법재판소 소장이 이끈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출마가 가능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조코위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민주적 규범은 약화됐다"며 "그는 반부패 기관의 권한을 박탈하고, 논란이 많았던 노동법을 통과시켰으며, 최근엔 기브란 시장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평했다.
CFR은 "프라보워 장관은 조코위 내각에서 일하기 전까지 이미 흔들리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노골적인 경멸을 거듭 표명해왔다"며 "그는 앞선 선거의 캠페인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뒤를 잇는 '스트롱맨형(strongman type) 지도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또 한 집회에 독재자의 상징인 백마를 타고 등장해 지저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며 "국방부 장관이 된 후 갑자기 차분한 표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인 사람이 프라보워 장관 같은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오래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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