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인니에 드리운 권위주의 그림자…민주주의 후퇴하나[딥포커스]

2004년 첫 대통령 직선제 치른 짧은 민주주의 역사
조코위 '정치 왕조' 구축으로 권위주의 회귀 가능성

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수도 자카르타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각 후보들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투표용지를 접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선은 오는 2월14일 치러진다. 2024.01.08/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자 향후 글로벌 경제를 이끌 것으로 여겨지는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리더를 뽑는다. 동남아시아에서 드물게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만큼 오는 14일 대선은 전 세계적 관심을 받는다.

특히 정치 및 종교 명문가와 군부 출신 등이 정가를 좌지우지해온 인도네시아에서 이들과 직접적 연줄이 없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2014년 당선은 민주주의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고,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려할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조코위 대통령이 편법까지 동원해 '정치 왕조' 구축에 나섰고, 또 군부 출신으로 과거 독재자 수하르토의 전 사위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어 7일 비영리매체 '페어옵서버'는 "이번 (인도네시아) 선거는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서 치러진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역사는 이제 막 꽃을 피우는 상태다. 2대 대통령인 수하르토는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안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50만~100만명이 숙청됐다.

이후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정당시스템과 의회제도를 개편한 이른바 '신질서'를 구축해 무려 32년 간 독재자로 군림했다. 철옹성 같은 수하르토 정권은 1997년 동아시아를 강타한 경제 위기로 붕괴했다.

10일(현지시간)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4.01.10/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인도네시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그간 켜켜이 쌓였던 시민들의 불만이 일시에 터져나오면서 민주화 운동도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하르토는 1998년 5월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다 2004년 첫 직선제 대선에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당선됐고, 2014년에는 조코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드물게 민주주의를 성장시킨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슬퍼런 독재의 칼날을 이겨내고 탄생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그 덕에 정권을 잡은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 왕조' 구축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코위 대통령은 선거 규정 탓에 3선에 나가지 못하자 자신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상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의 출마 연령은 만 40세 이상으로 제한된다. 이때문에 수라카르타(솔로) 시장으로 재직 중인 37세 기브란은 원칙적으로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경력이 있는 사람은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헌법 소원을 받아들이며 기브란의 출마길을 열어뒀다. 여기에는 조코위 대통령의 매제이자 기브란의 고모부인 안와르 우스만 헌재소장 개입이 있었다.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오는 14일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TV 토론회에 나섰다. 사진은 1위 주자 프라보워 수비안토(가운데) 국방장관와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간자르 프라노워(오른쪽 두번째) 전 중부자바 주지사와 아니에스 바스웨단(왼쪽 첫번째) 전 자카라트 주지사가 토론회에서 같이 인사하는 모습. 2024.02.05/ ⓒ AFP=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심지어 조코위 대통령은 기브란과 손을 잡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

프라보워는 수하르토로 수하르토 정권 시절에 군에 있으면서 동티모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와 1998년 혼란기 학생 시위 무력 진압 등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프라보워와 기브란의 선거 운동에 국가 자금이 사용되며 국영 언론과 중앙·지방 공무원들도 압박을 받는 등 정부 전체가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 왕조 구축에 동원되고 있다고 페어옵서버는 지적했다.

전세계 국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비영리기구 베텔스만 재단이 발표한 2022년 베텔스만 변혁지수(BTI)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발전 수준은 10점 만점에서 6.4점에 그쳤다.

이는 직전 발표인 2020년보다 0.1점 소폭 감소한 수치이며,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인 2014년 대비 0.7점 내려간 것이다.

이에 베텔스만 재단은 "2019~2021년 사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수준은 느리지만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다"라며 "사회·정치적으로 보수적 색체가 정부 담론에 확고히 자리잡는 동안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논란에 조코위 대통령의 모교인 국립 가자마다대학(UGM)까지 나서며 "민주주의 위기"라는 비판 성명을 내고 있지만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율은 굳건한 상황이다.

페어옵서버는 "민주주의의 질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민주국가다"라면서도 "조코위 대통령의 후임자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개선하는 동시에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고 꼬집었다.

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수도 자카르타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용지를 접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선은 오는 2월14일 치러진다. 2024.01.08/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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