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의발리톡] 코트 떠나는 디그여왕 김해란 "정말 수고 많았다, 내 무릎아"
V리그 여자부 레전드 리베로, 은퇴 후 양 무릎 수술 앞둬
"가장 기억나는 것은 이번 시즌 챔프전 2차전 교체 투입"
- 이재상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디그 여왕'으로 불리며 V리그 코트를 누볐던 여자 프로배구 레전드 리베로 김해란(40)이 정들었던 코트를 떠난다. 출산 후 복귀해 건재함을 자랑했던 그였으나 결국 무릎 통증으로 인해 은퇴를 결정했다. 김해란은 6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20년 넘게 버텨줬던 내 무릎들아, 정말 고생 많았다"며 웃었다.
흥국생명은 지난 5일 김해란이 2023-24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김해란은 V리그 여자배구의 한 획을 그은 '레전드'다.
그는 2002년 마산제일여고를 졸업하고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해 실업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2005년 V리그 원년부터 뛰었던 김해란은 이후 KGC인삼공사를 거쳐 2017-18시즌 흥국생명으로 이적, 2018-19시즌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9-20시즌을 마치고 출산을 위해 잠시 코트를 떠났던 그는 2021-22시즌 다시 돌아와 지난 시즌까지 프로배구 정규리그 483경기를 소화했다.
특히 2015-16시즌 여자배구 최초로 수비 1만개를 달성했고, 2023-24시즌에는 디그 성공 1만1003개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배구 역사에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김해란은 사실 1년 전부터 계속해서 은퇴를 고민했다. 다름 아닌 무릎 통증 때문이다. 과거 왼쪽 무릎을 다쳐 수술했던 그는 오른 무릎의 상태까지 안 좋아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 통증을 참으며 경기에 나서야 했다.
특히 2023-24시즌에는 9월에 오른 무릎을 다치면서 수술을 권고받았으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재활에 힘썼다. 그는 커리어 마지막 시즌 정규리그 8경기에 뛰면서 데뷔 후 가장 적은 경기 숫자를 소화했다.
김해란은 "작년부터 계속 은퇴 생각을 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무릎이 너무 아팠다. 정말 그동안 버티고 또 버텼는데, 이제 양쪽 다 아프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 말했다.
V리그에 많은 족적을 남긴 그는 이례적으로 은퇴 후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 그것도 차례로 오른쪽, 왼쪽을 올 연말까지 할 예정이다.
김해란은 "원래 5월에 수술하려고 했는데 김연경 올스타전(KYK 인비테이셔널 2024) 일정(6월 8~9일)이 있어서 스케줄을 바꿨다"며 "거기 목발을 짚고 갈 순 없어서 6월에 오른쪽 무릎부터 수술받기로 했다. 그리고 12월에는 왼쪽을 한다. 적어도 1년간 재활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많은 족적을 남긴 김해란은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었던 2023-24시즌 챔피언결정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무릎 통증으로 긴 시간 동안 실전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현대건설과의 챔프전 2차전에 교체로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더 이상 못 뛰다가 은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챔프전 2차전 2세트에 교체로 나갔다"며 "팬들의 함성이 너무나 생생하다. 안 뛰다가 들어갔는데 너무 떨리더라. 함성 덕분에 소름이 돋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마지막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프전에 진출하고도 우승을 놓친 것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해란은 "우승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서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해란은 리베로 후배들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해란은 "결국 '버티라'는 말이 정답인 듯하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리베로는 계속해서 버텨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잘할 때도 자만하지 말고 멘털 관리를 해야 하고, 흔들릴 때도 계속 이겨내야 한다. 지금 잘하고 있는 임명옥(도로공사), 김연견(현대건설) 같은 선수들도 어릴 때 많이 힘들었다. 그걸 버텼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온 몸을 던지며 디그 여왕이란 호칭을 얻었던 김해란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칭찬도 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10년 전부터 '언제 그만둬야 하나' 은퇴를 고민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다. 진짜 수고 많았고, 고생 많았다. 특히 내 무릎에 미안하다. 지금까지 좋아서 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다"고 웃었다.
동시에 김해란은 "안 아팠다면 50(살)까지 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더라"고 덧붙였다.
김해란은 아직 정해놓은 계획이 없다. 과거 지도자에 대한 꿈도 있었지만 당분간은 푹 쉬며 아팠던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아들과도 원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아직 정해놓은 것은 없다. 이제 막 끝나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일단 몸이 낫고 그다음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alexe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