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의발리톡] 핀란드서 온 '배구 혁명가'…"미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 대한항공서 3년 연속 통합 우승
"다 같은 배구 아닌,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것 중요해"
- 이재상 기자
(인천=뉴스1) 이재상 기자 = 1987년생. 유럽의 변방 핀란드에서 온 37세의 젊은 지도자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배구 혁명가'를 꿈꾼다. 2등을 해도 '실패'라는 평가를 받는 '1강' 대한항공 지휘봉을 이끌며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토미 감독과 함께 대한항공은 남녀부 통틀어 사상 최초의 통합 4연패라는 고공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11일 인천 하얏트호텔에서 만난 토미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2023-24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토미 감독은 12일 자국 핀란드로 돌아갔다.
'배구에 미쳐' 1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던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지인들도 만나고 편하게 쉴 것이다. 사실 핀란드 리그가 지금 챔프전을 하고 있어서 보러 가고 싶은데 아내가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30대 중반의 토미 감독은 사령탑 치고는 어린 편에 속하지만 지도자 경력은 절대 짧지 않다. 유망한 배구 선수였던 그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20대 초반에 일찌감치 은퇴하고 지도자로 나섰다.
일찍 선수 생활을 마친 것에 대한 후회를 묻자 그는 "프로 선수를 시작할 무렵 부상으로 은퇴했다. 당시에는 너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때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선수로 계속했어도 얼마나 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핀란드 프로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독일 SWD 파워볼리스 듀렌(2016~17년), 나고야 울프독스(2017~2021)에서 감독 경험을 쌓았고, 2021년 5월 대한항공 지휘봉을 잡았다.
토미 감독은 안 그래도 강했던 대한항공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일명 '호기심 배구'로 불리는 창의적인 '스피드 배구'를 가미시키며 대한항공의 고공비행을 견인했다.
그의 '배구 철학'을 묻자 토미 감독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사령탑은 "아직 내 배구 철학은 완성되지 않았다"며 "혼자 공부하기도 하고, 다른 경기를 보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빌려오거나 훔쳐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내가 진짜 꿈꾸는 것은 배구 혁명이다. 많은 팬이 우리 팀을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배구 혁명'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 그는 "30년 전과 지금의 배구는 너무나 다르지 않나"라며 "지금 배구도 30년 뒤와 다를 것이다. 계속해서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것을 시도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3년 연속 우승과 팀의 4연속 제패를 달성했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밤잠을 설치며 비디오 영상을 통한 경기 분석과 준비를 하며 '배구 공부'에 매진했다. 주변에서는 그를 "배구에 정말 미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토미 감독은 "개인 루틴이 경기 당일은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며 "어떻게든 분석해서 1%라도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물론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코치들이 영상부터 편집까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배구에 미쳤다는 평가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 감독은 "좋은 면에서 난 미친 사람이 맞다"며 "사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선 한 가지에 미쳐야 한다. 평범한 것보다는 미쳐야만 새로운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가 큰 토미 감독이지만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직업 자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며 "스트레스는 당연하다. 배구인으로 결국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구를 24시간, 일주일 동안, 365일 보고, 생각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하고 강조했다.
토미 감독이 대한항공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V리그 지도자 판세도 변했다. 2023-24시즌 오기노 마사지(일본) 감독이 OK금융그룹 지휘봉을 잡았고 다음 시즌에는 현대캐피탈, 우리카드, KB손해보험까지 남자부 7개 팀 중 5개 팀에서 외국인 지도자가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토미 감독이 쏘아올린 판세 변화와 관련해 그는 "내가 오기 전 대한항공에 로베르토 산탈리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팀에 올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많은 외국인 감독의 합류로 한국 리그 자체가 더 강해지고 발전한다면 긍정적일 것이다. 물론 나도 다른 감독들의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뺏어올 것"이라고 했다.
V리그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토미 감독에게 지도자의 최종 꿈을 묻자 내게 오히려 "기자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당황한 모습을 보고 웃던 그는 "난 배구 혁명가로 기억됐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더 배구에 미친 사람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alexe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