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여전히 갑갑한 축구협회, '동네 계모임' 과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잠정 연기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법원은 지난 7일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회장 후보가 축구협회를 상대로 낸 축구협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 들여 선거는 잠정 연기됐다. 2025.1.8/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혀를 차게 만드는 일처리가 계속 논란을 낳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 선거운영위원회(선운위)는 9일 "선거 일정을 23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정몽규 현 회장을 비롯해 허정무 후보, 신문선 후보가 경선하는 이번 선거는 지난 8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허 후보가 선운위의 불공정·불투명 운영을 이유로 낸 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7일 법원이 인용, 일정이 올스톱됐다.

법원은 "축구협회장 선거 과정에 공정성을 현저히 침해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만한 중대한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했다.

이에 선운위는 검증된 프로그램으로 선거인단 재추첨, 선거인단 예비 명단 3배 확보, 후보자에 위원회 명단 공유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 다시 날짜를 잡았고, 23일이라 발표했다. 그 시점이 9일 오후 5시 30분경이다.

그런데 발표 직후 신문선·허정무 후보가 반박 성명을 내면서 축구판이 또 시끌벅적해졌다. 이미 한 차례 파행했던 선거인데 23일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정몽규·신문선·허정무 후보 측 관계자와 선운위 관계자 그리고 KFA 관계자 등 5명은 지난 9일 모여 가처분 금지 인용 이후 대책에 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알려지지 않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축구협회는 당시 자리에서 협의된 날짜라면서 23일을 재선거일로 공지했다. 그러나 정몽규 후보를 제외한 두 후보는 펄쩍 뛰었다.

신 후보 측 관계자는 "토론에 앞서 KFA 관계자가 오늘 무언가를 확정하기보다는 서로 편하게 의견을 나누면 좋겠다고 분명히 밝혔던 자리"라면서 "당시 선운위가 2주 뒤인 1월 23일로 선거 날짜를 제안했는데 우리 측과 허 후보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자리가 마무리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허 후보 측 역시 "당장 날짜를 언제로 정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가처분 인용으로 불공정함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선운위를 새롭게 조직하는 게 우선이라는 뜻을 전했다"면서 "그런데 23일로 확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물론 후보들이 선거일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후보들 입맛에 맞는 날짜를 협의하진 않는다. KFA 관계자는 "선거일은 후보자들끼리 가장 원하는 날을 협의해 정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운영위가 절차에 맞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 투명한 절차가 빠졌다는 건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근래 축구협회가 계속 뭇매를 맞고 있는 바로 그 부분이 또 도마에 올랐다.

KFA 선운위는 9일 공지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8일' 선거 날짜와 절차 등을 결정했다고 했다. 9일 회의와 관계없이 이미 선거를 23일에 개최하기로 최종 확정했다는 뜻이다.

문서를 작성한 실무자가 9일을 8일로 실수했을 수 있다. 그래도 문제다. 축구협회가, 가뜩이나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토나 확인하는 책임자 없이 언론에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작은 단체여선 곤란하다. 일을 안하는 집단이다.

자꾸 태클을 걸고 있는 다른 후보들과 뜻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절차를 생략하거나 소통을 게을리 한 것이라도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가뜩이나 불공정, 불투명 이슈로 홍역을 앓은 것이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불편한 이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은근슬쩍이나 두루뭉수리로 넘어갈 생각이었다면 반성이 없는 집단이다.

허정무, 신문선 두 후보는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놓고 반영하기는커녕, 이미 결정해 두고 형식적인 자리를 가졌다고 황당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다시 가처분 신청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일이 아닌데 또 자충수를 두고 있는 축구협회다. 국회의원이 "동네 계모임보다 못하다"고 축구협회 행정력을 질타했을 때 과하다 싶었는데, 이 정도면 할 말 없다.

tr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