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축구 인생, K리그가 없었던 이유
‘박지성’이라는 이름에 쏠리는 눈길의 무거움
- 임성일 기자
(수원=뉴스1스포츠) 임성일 기자 =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가운데)이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부모님과 함께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4.5.14/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figure>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발표한 14일 수원시 ‘박지성 축구센터’. 야외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 테이블 앞에는 박지성의 지난 발자취를 알 수 있는 유니폼들이 놓여 있었다.
처음 축구화 끈을 동여맨 세류 초등학교 축구부부터 수원공고-교토 퍼플상가(일본)-에인트호벤(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QPR(이상 잉글랜드) 등 그가 거쳐 간 팀의 유니폼들을 전시했다. 물론 자랑스러운 ‘7번’이 새겨진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니폼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K리그 클럽의 유니폼은 없었다.
박지성은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물을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안겼다. 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2002월드컵이 끝난 뒤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의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단초가 됐다. 2005년 여름,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평가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됐다. 당당히 축구 종주국을 휘저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다.
굳이 작은 아쉬움을 꼽자면 K리그의 필드에서는 박지성의 뛰는 모습을 끝내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지성은 “K리그에서 뛰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에게 권유도 받았다”는 말로 국내 무대에서의 활약도 고려했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현실이 되진 못했다. 다양한 속사정까지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이유할 수 있었다. ‘부담’이 큰 탓이었다.
박지성은 “많은 분들이 K리그를 걱정한다. 하지만 '침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ACL을 통해서 입증하고 있다. 현재 유럽파들 대부분이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유럽에 나갔다”면서 “K리그와 유럽의 수준 차이는 크게 없다. 기량보다 경험적인 차이일 뿐이다. K리그에서 대표팀에 뽑힐 정도라면 충분히 유럽에서 뛸 수 있다”며 국내 프로리그의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만약 K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 장담할 수 없으나 아마 많은 이들이 원하는 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한 번도 K리그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도 흥행에는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농담을 섞었다.
박지성의 표현대로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를 일이나 분명 큰 이슈가 됐을 것이다. 박지성은 그래서 도전이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는 “박지성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특히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 더더욱 부담이 컸다. 하지만 대표 선수라면 극복해야할 일이다. 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중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하면서도 “다행히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 뛰었기 때문에 부담의 강도가 다소 적었다”고 덧붙였다.
엄청난 사랑을 받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축구 선수였으나 그 사랑을 충족시키기 위한 무게감도 상당했다는 방증이다.
박지성은 “(그 시선을)국내에서 받지 않아서, 유럽에 주로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그저 미소를 머금었다.
박지성은 1981년생이다. 아직은 은퇴를 말하기에는 이른 나이기도 하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더 뛰기를 원했다고 한다. 계속 그라운드를 누비는 박지성을 보고 싶은 팬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박지성은 휴식이 필요했다. 무릎의 고통만큼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도 컸다. 이제 아쉽지만 박수로 보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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