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인권 자화상…'미등록 이주아동'
"출생등록 받아주고 부모 체류 한시적 허용을"
"의무교육 보장…의료급여 지원 등 건강권 보장"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 국회서 공청회
- 염지은 기자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김준식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제정추진네트워크 공동대표가 3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14.4.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figure>"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 "대한민국 사람인데요."
아이는 당연한 걸 묻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에서는 존재가 있지만 그 밖의 장소에서는 존재가 없다.
같은 반 급우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갈 때도 아이는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혼자 남는다. 의료보험이 안돼 아파서도 안된다. 아이는 은행에 저축도 할 수 없고 교통카드 발급도 안된다. 휴대폰도 가입할 수 없다. 아무런 사회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아이는 주민등록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 자신이 불법 체류자라는 말을 친구에게 듣고난 후 아이는 누가 잡으러 올까 괜히 무섭고 겁이 난다. 불법이라는 것이 속상하고 화가 나 엄마한테 따져보고 싶지만 엄마 마음이 아플까 가슴 속에 꼭꼭 누르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아이는 너무 서러울 때는 잠자리에 누워 아끼는 인형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벌써 5학년인 아이는 중학교에는 갈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커 갈수록 세상이 두렵기만 하다.
"이것이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나 아빠는 붙잡혀 본국으로 추방당하고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는 미등록 아이의 현실입니다."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 공청회에서 토론에 나선 김효진 살레시오수녀회 수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사례를 소개하다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안을 발제하던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무등록 이주아동은 복지사각지대조차 꿈꿀 수 없고 학교에서는 왕따가 되기 일쑤"라며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아 보호와 관리가 불가능한 아이들이 인권침해의 먹잇감으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방치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2013년 2월 말 기준으로 합법체류 기간이 만료돼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한 19세 미만의 아동 수가 4700명 정도. 그러나 이는 국내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한국출생 아동 수는 제외된 것이다.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 중 부모가 불법 체류 신분 노출을 꺼려 자국 대사관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어디에도 출생이 등록돼 있지 않은 미등록 무국적 아동 수는 2010년 기준 2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본인과 부모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병원 진료, 학교 진학, 보육, 학교 급식, 각종 복지 서비스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교통카드 발급, 휴대폰 가입, 인터넷 등록, 온라인 쇼핑, 은행 이용 등도 할 수 없다.
1990년 발효된 유엔(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제7조2항)'고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 가입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1년 '아동의 출생등록과 관련해서 모든 아동이 인간으로 인정받고 아동의 완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유엔은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무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을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의 진전은 없었다.
국내 출생신고 사항을 정하고 있는 법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다. 법은 '국민'의 출생·혼인·사망 등 가족관계의 발생 변동사항에 관한 등록과 그 증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삼는다. 내국인의 경우 부 또는 모는 의무적으로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사무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아동에 대한 가족관계등록의 신설, 주민등록, 건강보험이 한번에 진행된다.
그러나 현재 이주아동에 대한 국내 출생등록제도는 없다.
혈통주의(속인주의)에 입각한 한국 국적법에 따라 노동자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자녀들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한국 국적을 취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우리 정부는 외국인의 출생등록 등 보호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해당국 공관의 책무이므로 국내 출생 이주아동은 주한 외국 공관에서 본국법에 따라 출생등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많은 이주아동들은 태어나자 마자 체류자격없는 미등록 상태에 놓이고 있다. 특히 이주여성이 미등록인 경우 아이가 한국에서 출생해 자랐어도 한국과 본국 어느 곳에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고 있다. 엄마가 미등록이었기 때문에 아이도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가 된다.
출생증명이 담보되지 않으면 신분을 확인할 수 없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초중등 과정을 이수해도 학적이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기 어렵고 학교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다. 나이를 증명할 수 없어 형사미성년자임에도 어른처럼 처벌될 수도 있다. 또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3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2014.4.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figure>공청회는 이같은 이주아동에 대한 권리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 추진을 앞두고 국회인권포럼(대표의원 황우여), 국회다정다감포럼(대표의원 이자스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을 위한 네트워크 등이 공동 주최했다.
공청회의 좌장은 국가인권위원인 박정해 법률사무소 허브 변호사가, 발제는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성천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부장, 김효진 수녀가 참여했다.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참석해 정부의 입장에 대해 밝혔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안'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이주아동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없는 생활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주아동의 출생등록 권리 보장 ▲한국에서 출생해 거주하는 이주아동이 성년에 이를 때까지 체류자격 부여 ▲성년에 달한 이주아동의 영주권 신청 자격 부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모와 함께 살 권리 보장 ▲의무교육 보장 ▲필수예방접종, 의료급여의 지원 등 건강권 보장 ▲아동보호서비스 및 아동복지시설 이용 등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담고 있다. 이주아동'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규정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이주아동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인류 보편적 인권 보장 차원에서, 노동력 확보 및 저출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익 차원에서,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으로 부상한 국가 위상에 맞는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 이주아동 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다소 회의적이다.
법무부 외국인정책과 구본준 과장은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신분 상태에서 아이를 출생등록 해주라는 것은 혼란스럽다"며 "아동들뿐만 아니라 어쨌듯 약속을 안지킨 부모들을 한국에서 아이와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하면 출입국관리가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또 "이주아동 건강은 건강법에 넣어야 실효성이 있지 않나 본다"며 "불법체류자를 합법화할 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으로 국민들 입장에서 반감이 심할 수 있다"고 했다.
복지부 송준헌 아동복지정책과장은 "건강권, 보육권 등 각종 보건복지 권리와 관련된 소관 부서의 입장은 굉장히 신중하자는 입장이다"며 "외국인에 대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 가져갈 지 좀 더 논의 결과들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문진철 학생복지정책과 교육연구관은 "이주아동에 대해 의무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면서도 "국가가 교육기본법에 의무교육의 대상자를 '모든 국민'으로만 한정한 것을 재고하고 이주아동에 대해서도 취학통지서를 발급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한다는 주장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주아동까지 의무교육 확대 주장과 관련해 "국가가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 대해 학교에 대한 취학 의무를 지울 수 있는 가에 대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자국민이 아닌 자에 대해 자국의 국가관과 역사관 등을 교육받도록 의무화해 이주아동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청석에선 이같은 정부 관련 부처의 설명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낳은 아이들까지 영주권을 얻는 마당에 한국에서 태어나는 외국 아이들에게 영주권을 주면 왜 안되느냐", "국민세금으로 지원할 수 없다고 하는데 외국인 노동자들도 세금을 낸다", "법을 위반한 부모와 연계됐다고 하는 데 한국에 연좌제 적용이 있느냐"...
senajy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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