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앙꼬없는 찐빵"…29만 유튜버가 10년째 동성부부로 산다는 것
"성소수자 얘기는 왜 진지해야 하나요? 우리의 삶은 시트콤"
두 아빠 손 잡을 아이 특별한 일 아냐…다양한 가족 중 하나
- 한병찬 기자, 장성희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장성희 기자 = "부케를 받아봐도 괜찮겠습니까."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일면식이 없는 한 할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반대 집회가 예고됐기에 잠시 긴장했던 10년 차 게이 커플이자 29만 유튜버인 박종렬씨(활동명 백팩)와 김기환씨(활동명 킴)는 그의 입에서 나온 반전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윽고 '결혼식 퍼포먼스'를 축하하는 하객들의 함성과 함께 부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들의 손을 떠난 부케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착했고 그는 "태어나서 처음 부케를 받아본다"며 "결혼을 축하한다"고 웃어 보였다. 부케를 받은 이도 던진 이도 잊지 못할 첫 경험이었다.
지난달 12일 망원동에 있는 커플의 집에서 만난 이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면서도 "언젠가 진짜 결혼하는 날이 오겠죠"라고 말했다.
◇"다르지 않단 것 전하고 싶어…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용기를"
박씨 커플은 2019년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이들은 함께 식사하고 데이트하는 모습부터 게이 커플로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까지 일상의 즐거움과 고민을 모두 영상에 담는다. "퀴어를 다룬 콘텐츠는 우울한 게 많은데 저희는 시트콤같이 밝고 즐거운 영상을 전달하고 싶다"는 이들의 유튜브 채널 '망원댁TV' 구독자 수는 어느덧 29만여명이다.
박씨는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킴과 함께 사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며 "가족들과 왕래도 하고 주변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있는 등 게이 커플로서 자연스럽게 누리고 사는 일상을 유튜브에 남겨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성소수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 모습을 보고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힘들어할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성 정체성을 알게 된 이들은 청소년기에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부모님께 배우거나 학교를 통해 배운다. 혹은 매스컴을 통해 미래상을 그려나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주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결혼도 못 하고 숨기고 살다가 고독사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불안했다"며 "이후 성인이 되고 한국 게이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모임에 나가게 됐는데 다양한 나이대에 성소수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40~50대가 돼서도 즐겁게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성소수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수천, 수억만 가지 방식 중에 한 가지 선택지로 저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영상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는 댓글이 남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힘들어할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독립된 성인이 되고 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얼마든지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며 "너무나도 재밌는 일들이 인생에 펼쳐질 테니까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위로했다.
◇ "모든 이가 혼인신고 할 수 있길"…미래는 둘 아닌 셋
'친구사이'에서 처음 만난 둘은 2016년부터 8년 동안 함께 살고 있다. 사랑하고 함께 살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다.
차별은 명확하다. 신혼부부 전세 자금 대출은 물론 배우자가 아플 때 실질적 도움을 줄 수도 없다. 동반자가 사망할 경우 상속은커녕 장례를 치를 권리도 없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박씨는 결혼은 "앙꼬(단팥) 없는 찐빵"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017년 킴이 수술했는데 보호자 자격이 없어서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며 "결혼은 함께하는 보호장치인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 결혼식만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살고 사랑을 해도 사회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며 "결혼하고 싶지만 혼인신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결혼식만 올리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모든 동성 커플이 결혼을 꿈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혼을 원하는 동성 커플이 있다면 이들이 서로의 법적 울타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전 세계 34개국이 동성혼을 허용하고 있고 2019년에는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지난 2월21일 동성 커플에게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비록 사실혼 관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첫발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씨는 "퍼레이드하고 부케를 던지며 우리도 머지않아 한국에서 결혼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며 "서로 사랑하는 모든 이가 혼인신고 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용기를 낼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둘이 아닌 '셋'이다. 미래 가족사진에는 두 아빠의 손을 잡고 활짝 웃는 아이가 있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가족 중 단지 하나일 뿐이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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