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성희롱 당했는데 無조치…직장인 절반 "회사, 갑질 보호 안 해"

갑질 피해자 62% "참거나 모르는 척"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6년, '갑질' 여전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은행원으로 근무 중인 저에게 고객이 악의적으로 민원을 넣고, 지점에 찾아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객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겠다고 하자 상급자는 왜 일을 만드냐고 오히려 절 타박했습니다.

#블랙컨슈머와 장시간 통화를 하기도 하고,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런 보호 조치를 해주지 않아 정신질환이 생겨 치료 중입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회사가 민원인이나 고객의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갑질을 경험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피해 사실을 참거나 모르는 척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1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원인 갑질' 설문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20일 밝혔다.

설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6%가 고객, 학부모, 아파트 주민 등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지방 공공기관은 26.4%로 특히 높았다.

또 직장인 10명 중 8명(77.9%)은 민원인들의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중앙·지방 공공기관의 경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85.7%에 달했습니다.

민원인 괴롭힘 경험자 중 61.9%는 피해 이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응답했다. 피해 이후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응답도 25.6%에 달했다. 반면 회사에 대책을 요청한 것은 26.3%에 그쳤다.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은 '20대'와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 '30대'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았다.

직장인 2명 중 1명(53.6%)은 고객 폭언 등으로부터 회사가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민원인 갑질로 고통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10월부터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따르면 회사는 고객 등 제3자의 폭언을 예방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직장인 36.1%는 법 시행 6년이 지나도록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63.9%였다.

송아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문제상황 발생 시 대처방안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간단한 고객 응대 멘트를 추가하는 등 형식적인 조치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송 노무사는 이어 "위반 시 별다른 제재 규정이 없어 노동부가 관리, 감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며 "문제상황의 예방, 발생, 사후 조치의 세 단계에서 실질적인 감정노동자 보호가 이뤄지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cym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