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는 MZ기자들이 본 농촌 노인의 죽음[이승환의 노캡]

'농촌형 자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전국 82개 군 중 44% 정신과 병의원 '0개'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최근 사회에서 알게 된 30·40대 지인 세 명과 저녁 식사를 했다. 모두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이다. 이중 30대 후반 남성이 말했다.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우울해 정신건강 의원을 다니고 있어요."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고백에 다소 놀라긴 했지만 다들 큰 문제가 아니라며 위로했다. "그럴 수 있어요." "내 친구도 상담받더니 훨씬 나아졌어요." “마음의 병, 감기처럼 약만 잘 먹으면 금세 낫는대요."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이 정신과 진료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세상이다. 서울 강남역 일대만 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신건강' '마음 치유' '마음 감기'라는 간판의 의료기관이 우후죽순 생겨 자리 잡은 상태다. 일부 정신건강 의원 두 곳의 간격은 도보로 2분 거리인 '200m'에 불과하다. 조악한 간판이나 상술이 거슬리기는 한다. 하지만 이곳을 오가는 누군가는 위험한 생각을 하다가도 간판 문구를 보고 병원 문을 열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주로 도시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뉴스1은 농촌으로 분류되는 전국 82개 군의 의료기관 분포도를 자체 조사했다. 그 결과 절반에 가까운 36곳(약 44%)에는 정신건강의학 병·의원은 물론 정신건강 외래를 하는 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었다.

조기에 용종을 절제하면 암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울증도 제때 정신건강 진료를 받으면 극단선택의 충동에 이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개념은 농촌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아흔살 할머니 이금자 씨(가명)는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1층 기와집에서 홀로 지내다 지난 10월 1일 초면인 뉴스1 남해인 기자를 보자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도 "우울, 그런 거 나 몰라"라고 말했다. 일부 농촌에서는 '정신질환 진료를 받다가 사회 이단아로 낙인찍힌다'는 인식이 남았다. 주민들은 병·의원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쉬쉬한다.

지난 두 달간 뉴스1이 심층 취재한 생명 존중 탐사 기획 '외딴 죽음'의 취지는 농촌형 자살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농촌의 정신과 의료기관을 확충하고 주민들의 인식 개선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기획에 참여한 김민수 남해인 홍유진 기자는 모두 90년대생으로 최소 21년에서 최대 28년간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자살 위험군 18명과 자살 유가족 7명을 포함한 약 50명을 만났다. 충북 옥천군과 음성군, 충남 금산군과 논산시 양촌리, 강원도 평창군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외부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역 토박이에게 너무나 익숙해 외면받는 실태를 포착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려보자. 보스턴 가톨릭 교수 사제의 아동 성범죄 의혹을 겨냥해 탐사 보도를 지시한 이는 보스턴 글로브지에 갓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배런이었다. 그는 보스턴 바깥에서 온 유대인 출신의 외부인이었다. 배런은 가톨릭 권위에 눌린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감지했다.

90년대생 '외부자' 기자들이 본 농촌의 자살 문제는 어떨까. 그 첫 편은 3일 오전 5시 <"올해 19명 숨졌지만 아무도 몰랐다"…허수아비 마을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농촌에선 흔하고 일상적이지만 외부자의 시선엔 위태로운 장면이 본문 곳곳에 담겼다.

앞으로 5편 더 기사화되는 '외딴 죽음'이 '스포트라이트' 기자들의 성범죄 보도처럼 사회 전체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잔뜩 웅크린 채, 숨죽이고 있는 농가의 안쪽을 명료하게 드러내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

<관련기사>

"올해 19명 숨졌지만 아무도 몰랐다"…허수아비 마을의 비극[외딴 죽음]①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