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토사 매몰 사고…굴착면 무시한 채 작업, 건설사 대표 집유

굴착면 붕괴로 머리뼈 골절 사망…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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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부실한 안전 조치로 인해 근로자를 토사에 매몰돼 사망케 한 건설사 대표와 현장소장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강영기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 혐의를 받는 대표 최 모 씨(50)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현장소장 백 모 씨(67)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명했다. 한원건설 법인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 등 혐의로 벌금 2억원이 선고됐다.

지난 2022년 11월 17일 오후 4시8분, 서울 은평구의 한 육군부대 공사장에서 오수관로 매설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 A 씨가 굴착면 붕괴로 토사에 매몰돼 머리뼈 함몰 골절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굴착면의 높이가 2미터가 넘을 경우 작업 시 굴착 방법 및 순서, 흙막이 시설 설치 방법 등을 담은 작업 계획서를 작성 후 이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한다. 지반 굴착 시엔 굴착면 기울기를 34~45도 각도(보통 흙 습지 기준)로 유지하거나 흙막이 시설 등 기울기 면의 붕괴 방지를 위해 조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백 모 씨는 작업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굴착면 기울기를 준수하지 않는 등 책무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다. 경영책임자인 최 씨도 백 씨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등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안전 관련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당일 현장은 2주 전 상수도관 매설 작업 후 되메우기를 하며 굴착기로만 지반 다짐을 했고, 수일 전부터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A 씨가 숨진 지점은 지반 기준 깊이 2.6m에 해당하는 위치였는데, 사고 현장 인근엔 굴착 토사가 굴착 사면에 바로 인접해 적재되는 등 안전 조치가 충분히 취해지지 않았다.

이들은 공소사실에 나온 산업재해로 이미 2023년 10월 벌금 150만 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은 면소(부적당한 공소를 이유로 소송을 종결)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적용 혐의 중 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죄는 사건 발생 당시 금액 50억 원 미만의 공사에만 적용됐으므로 이번 사고는 해당 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 측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백 씨와 회사가 약식명령 처분을 받은 건은 공사 현장 지하 출입 계단에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부분이지, 근로자 사망 사건과 기본적 사실관계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 당시 공사 금액이 50억 원보다 작은 규모라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선 재판부는 최종 수정한 계약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3개월 전인 2022년 8월 이미 51억 원 상당으로 증액된 수정 계약서가 전산 시스템에 등록됐기 때문이다.

비록 수정 계약서에 대한 회사 측의 전자 서명이 사고 발생 5일 뒤에 이뤄지긴 했지만, 전자서명을 요청하는 시점에서 이미 그 전에 당사자들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시각이다. 또한 2022년 8월부터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51억 원 상당을 기준으로 책정됐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피고인들이 유족들과 원만히 합의하고 잘못을 인정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피고인 측과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쌍방 항소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