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아직은 즐길 수가"…치유 안 된 이태원 참사의 슬픔
"4월 되면 세월호 생각나듯…집단적 트라우마 남아있어"
- 유수연 기자
"영어학원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핼러윈 파티에 열광하거든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일이었는데…"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 박여울 씨(여·47)는 "이맘때 많이 보이고 생각난다"며 "세월호처럼 이태원 참사도 계속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보라 팔찌 보라 리본 공작소' 행사에 참여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 집'에서 만난 시민들은 박 씨처럼 그날의 슬픔을 애써 누르며 보라색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말이 되면 '조건 반사'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저녁 7시쯤 '별들의 집'에는 시민 20명 정도가 모였다. 이미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토요일에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서 나눠줄 보라 리본 제작에 집중해달라"고 독려했다. 그러자 한 남성은 "많이 만들려고 장갑까지 준비했다"고 장갑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 박 씨와 함께 참석한 최윤송 양(여·17)은 "(이태원 참사는)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해서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된다"며 "이 자리를 계기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억을 나누고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리본을 만들던 이예인 씨(여·30)는 2주기를 앞둔 지금도 이태원 참사가 생겼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씨는 "참사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원봉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이번 주에 이태원 참사는 어떤 일이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자녀 3명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황재호 씨(남·56)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애랑 비슷한 또래들이 많아서 가슴에 남았다"며 "대처하지 못하고 방치했던 어른들의 책임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끝말을 잇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한 주 앞두고 시민들은 죄책감과 의문 등의 감정을 겪고 있었다. 박 씨는 "아이들에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생각되지 않겠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냐'라고 교육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중학생 땐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2년 전엔 이태원 참사를 접한 A 씨(여·25)는 "배 하면 세월호가 생각나고 이태원 하면 참사가 생각날 정도로 충격적인 기억"이라며 "앞으로 2~3년은 핼러윈이라고 마음 놓고 재밌어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문화 행사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집단적인 아픔이 있다"며 "세월호 때는 벚꽃 냄새, 목련 냄새에도 우울해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정 시기에 우울해지는 '애니버서리 그리프(Anniversary Grief)'라는 트라우마 반응이 찾아오는 셈이다.
임 교수는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기 때문에 핼러윈이 다가오면 불안, 죄책감 등 복합적 감정이 있을 것"이라며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완전히 치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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