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68억' 대신 남겨진 메모 "내가 누군지 알아도 모른 척해"
범인 보관 창고 업체 직원…은닉 장소 마련 모친 도와[사건의재구성]
현금 사라진 사실 최초 발견한 30대 여성도 입건…'28억 행방 묘연'
-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내가 누군지 알아도 모른 척하라. 그러면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지난 9월 26일 피해자의 지시로 서울 송파구의 한 무인 물품보관 창고에서 현금을 꺼내기 위해 방문한 B 씨(30대·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들어있어야 할 캐리어 가방에는 A4용지와 함께 이런 내용이 프린트된 메모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사라진 금액은 자그마치 68억 원이었다.
당황한 피해자는 27일 새벽 2시쯤 경찰에 "캐리어 6개에 나눠 보관한 현금 약 68억 원이 도난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무인 물품보관 창고를 운영하는 업체 팀장급 직원 A 씨(40대·남)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A 씨는 지난 9월 12일 오후 7시 4분쯤부터 13일 오전 1시 22분까지 현금을 보관창고에서 꺼냈고, 다른 칸 창고로 옮겼다. 15일에는 여행 가방 4개를 이용해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장소로 현금을 운반했다.
범행 수법도 치밀했다. A 씨는 범행 당일 물품 창고 복도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가 작동하지 않도록 전원 코드를 뽑았다. 경찰이 확인한 결과 9월 13일 이전 CCTV 기록도 삭제된 상태였다.
경찰은 추적 끝에 지난 10월 2일 경기도 수원의 한 노상에서 A 씨를 체포했다. 3일 오전에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건물을 압수수색 해 39억2500만 원을 발견했다.
발견된 장소도 기이했다. 건물 층 사이의 본래 화장실로 사용됐던 창고였다. 해당 장소는 A 씨의 어머니인 C 씨가 마련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경찰은 C 씨가 직접 절도 범행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선 조사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창고에서 압수한 현금 이외에도 A 씨가 채무 변제를 위해 지인에게 건넨 9200만 원도 압수했다. 경찰이 압수한 금액만 총 40억 1700만원에 달한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A 씨를 11일 오전 방실침입, 절도, 업무방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어머니인 C 씨는 장물죄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경찰은 캐리어에서 돈이 사라진 사실을 최초로 확인한 B 씨도 절도죄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B 씨는 피해자의 지인이다.
경찰 관계자는 "B 씨는 피해자의 지시로 9월 5일과 8일에 현금을 가지고 나온 것을 확인했다"며 "(현금을 훔친) A 씨하고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하고 있고, 아직 범죄 관련성은 확인이 안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피해자가 68억 원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압수한 40억1700만 원을 제외한 금액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 피해금의 정확한 액수와 출처 등을 명확히 확인하고, 공범 관계나 추가 은닉 피해금의 존재 여부 및 소재 등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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