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조난 70대 극적 구조…와이파이로 위치 추적 정밀해졌다

고혈압·당뇨 앓던 실종 노인…10시간 만에 최신 장비로 구조
구조대상자 수색범위 좁히는 '112 정밀탐색기' 서울 전역 보급

ⓒ News1 DB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오후 5시쯤 산에서 내려가신다는 분이 연락 두절됐어요."

지난달 29일 밤 서울 중랑경찰서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는 A 씨(72)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중랑경찰서 망우지구대 경찰관들은 최근 경찰청에서 보급받은 '112 정밀탐색기'를 갖고 급히 망우산으로 출동했다. 112 정밀탐색기는 와이파이(Wi-fi) 송신 기술을 이용, 구조대상자의 위치를 더 정밀하게 파악해 수색 범위를 좁혀주는 최신 장비다.

경찰이 구조에 활용하던 기존 LBS 시스템은 이동통신사를 통해 구조대상자의 위치 정보를 받는 방식으로 오차 범위가 평균 200~300m, 최대 반경 500m까지 차이가 난다. 여기에 정밀탐색기를 추가로 활용하면 이 오차 범위를 훨씬 줄일 수 있다.

망우지구대 경찰들은 여섯 개 팀으로 나뉘어 각각 정밀탐색기를 가지고 수색에 착수했다. 그중 한 팀이 갖고 있던 정밀탐색기에 희미한 신호가 잡혔다. 1~20까지 신호 강도는 20에 가까울수록 구조대상자가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정밀탐색기로 수색 범위를 반경 30~50m 정도로 좁힌 경찰은 신고된 지 약 4시간 만인 30일 새벽 2시 50분쯤 A 씨를 발견하고 구조했다. A 씨는 하산 중 등산로에서 미끄러져 평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비탈에 조난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깊은 산 속이라 기지국 신호가 약해 A 씨가 스스로 구조 요청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조난한 지 약 1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A 씨는 많이 지친 상태였고 팔다리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건강에 큰 이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랑경찰서는 바로 전날인 지난달 29일 새벽에도 용마지구대에서 정밀탐색기를 이용해 주택가에서 신고가 들어온 한 명을 구조한 일이 있었다. 정밀탐색기를 통해 신호가 잡히는 건물을 특정할 수 있었고, 신고 약 2시간 만에 구조할 수 있었다.

112 정밀탐색기 (경찰청 제공)

◇ 기존 시스템보다 더 정밀한 위치 추적 가능…서울 전 지역 보급

정밀탐색기는 2021년 현장 경찰의 아이디어로 출발, R&D 사업으로 추진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했다. 기존 LBS 시스템으로는 고층 건물이나 실내에 있는 구조대상자의 위치를 상세히 탐지하기 어렵지만 정밀탐색기를 이용해 신호 강도를 보며 비교적 정밀한 위치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밀탐색기 신호 10 이상이면 보통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약 5~10m)까지 가까워졌다는 뜻"이라며 "고층 건물에서도 신호가 가장 강하게 잡히는 특정 호실로 수색 범위를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2022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첫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작년에는 전국 7개 관서에, 올해는 이달부터 서울 전 지역 31개 관서에 정밀탐색기 40대씩 총 1240대를 보급해 2차 실증 과정을 진행 중이다.

경찰청은 연말까지 정밀탐색기의 효용성과 안전성 등을 검증하고 보완 단계를 거쳐 내년부터 2028년까지 전국 경찰관서로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도 관련 예산으로 6.6억 원을 확보해 3000여 대를 추가 보급할 예정이다.

◇전국 스마트폰 보급률 97%, 문제는 아이폰…"애플, 위치 정보 허용 안해"

와이파이 기술을 이용하는 만큼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2G 휴대전화에는 정밀탐색기를 적용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지만,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97%에 이르고 있어 경찰은 대다수 사례에 적용될 것으로 본다.

다만 문제는 아이폰이다. 애플의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 정책상 와이파이를 통한 정밀 탐색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 구조대상자가 112와 통화 중일 때에만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통화가 끊어지면 위치 정보를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이폰 이용률은 약 25%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방통위를 통해 애플에 긴급 구조를 위해서라도 위치 정보 공유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제시하고 있는데 아직 애플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아이폰 이용자에 대해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답답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