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사진 찍힐까 '두리번'"…시원한 옷차림 포기할 수도 없고

7~8월 불법 촬영 범죄 몰려…짧은 하의 손·가방으로 가려
안심 거울·홍보 스티커 효과 '글쎄'…순찰 강화해야

11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화장실에 불법촬영 방지 홍보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2024.08.11 ⓒ 뉴스1 임여익 수습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임여익 기자 = "계단이나 화장실 갈 땐 걱정되죠."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낮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으면서 민소매 티, 반바지 등 시민들의 옷차림도 한껏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시원한 재질의 치마를 입었다는 대학생 안 모 씨(24)는 매고 있던 큰 가죽 가방으로 치마 뒷부분을 살짝 가린 채 9번 출구로 나오는 계단을 올랐다. 혹시 모를 불법 촬영의 '표적'이 될까 미리 조심하자는 차원에서다.

안 씨는 "제 뒤에 오는 사람도 괜히 저 때문에 신경 쓰일 수 있고, 스스로의 안전도 지킬 겸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며 "요새 뉴스에서 (불법 촬영) 소식이 워낙 들려오다 보니 항상 의식하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청치마를 입은 김 모 양(17)도 여름철 짧아진 옷차림에 불안함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아이돌 생일 카페에 가기 위해 친구와 아침부터 홍대를 찾았다고 밝힌 김 모 양은 "오늘 좀 꾸며보고 싶어서 치마를 입었는데 생각보다 홍대에 사람이 많다"며 "지하철에 앉아있거나 계단 위로 오갈 때 신경 써야겠다고 느낀다"고 걱정했다.

무더위가 지속되며 시민들의 옷차림도 짧아지자 지하철, 공공화장실 등에서 불법 촬영을 염려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치마 등 옷을 손으로 가리거나 휴지로 화장실 구멍을 막는 등 자체 조처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안심거울 등 지자체 및 경찰 차원의 조치에 대해선 별다른 예방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통상 불법 촬영 등 성범죄는 휴가철이자 더위로 옷차림이 짧아지는 여름에 주로 발생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불법 촬영 검거 건수는 총 6626건이었는데, 이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1297건(19.6%)이 7~8월에 발생했다.

이중 지하철, 노상 등 공공장소는 불법 촬영이 발생하는 대표적 장소 중 하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발생한 불법 촬영은 아파트 등 공중 주택(863건) 다음으로 노상(692건), 역 및 대합실(357건), 지하철(361건)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그해 7월 기준 공중화장실에서도 313건가량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안심거울이 부착돼 있다. 2024.08.11 ⓒ 뉴스1 임여익 수습 기자

불법 촬영이 늘어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불법 촬영 예방 홍보 스티커를 추가로 부착하고 시민이 계단 등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안심 거울'을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범죄 예방 효과는 크지 않은 모습이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엔 1개의 안심 거울이 설치돼 있었지만 기자가 이곳에 서서 30여분 간 지켜본 결과 고개를 들어 거울을 확인하는 시민들은 한 명도 없었다. 홍대입구역에서 만난 윤 모 양(17)은 "안심 거울이 설치된 사실을 방금 말해줘서 처음 알았다"며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인파가 많은 시간대엔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8번 출구 앞에서 만난 강 모 씨(26)는 "제 키가 180대로 큰 편인데도 저 앞에 가서 껑충 뛰는 게 아니면 거울이 안 보인다"며 "여성분들 입장에서 저런 거라도 달려 있으면 안심되긴 하겠지만 실제로 범죄가 일어난다고 해도 걸으면서 살필 수 있을까 싶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실제로 163센티미터(㎝) 신장의 기자가 홍대 입구 8번 출구 계단을 직접 걸어보면서 안심 거울을 살펴본 결과, 거울 앞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발뒤꿈치를 들지 않는 이상 주변 행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CCTV 설치 등을 알리는 촬영 홍보 스티커도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긴 매한가지였다. 'CCTV 24시간 촬영 중' '지하철 성범죄 out' 등의 스티커가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지만 이를 살피거나 읽어보는 시민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일부 칸 화장실 벽엔 정체 모를 구멍이 뚫려져 있었는데 누군가 흰색 또는 검은색 펜으로 칠해 구멍을 막아놨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한창 불법 촬영 문제가 많이 나올 땐 저도 화장실 구멍 같은 걸 휴지로 막고 그랬다"며 "안내 스티커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CCTV가 있어도 불법 촬영 범죄는 계속 일어나지 않느냐. 별로 안심이 되는 조치 같진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직장인 추 모 씨(29)는 "스티커가 계단, 화장실 앞에 붙어있다고 해서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폐쇄회로(CC)TV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 다른 사각지대로 가서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느낌"이라며 "순찰을 늘리는 등 다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