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보좌관이 '역사적 순간' 자부심 느낀 수사권조정[이승환의 노캡]

'수사권 조정' 시행 3년 7개월 어떤 평가 받을까
'업무 과부하' 원인 지목…후유증 겪는 경찰관들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사진은 14일 오후 도심에서 바라본 청와대 전경. 2021.7.14/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이룬 최초의 정부.'

지난 2월 출간된 책 '조국 그리고 민정수석실'(메디치미디어) 56쪽에 나오는 표현이다. 수사권 조정을 이룬 '최초의 정부'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황현선 씨(현 조국혁신당 사무총장)가 쓴 책이다. 그의 상사이자 민정수석은 현재 조국혁신당 대표인 조국이었다. 조국의 민정수석실은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 간 이견을 조율하며 수사권 조정 입안을 주도했다. 민정수석실 일원이었던 저자는 문 정부의 검찰개혁 국정과제인 수사권 조정의 닻을 올리는 순간을 자못 감격스럽게 표현했다.

"마침내 2018년 6월 21일, 역사적인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이낙연 총리가 그 내용을 발표하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의문에 서명했다.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 조국 수석이 직접 기자들에게 합의문의 내용을 브리핑했다. 나 또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다."('조국 그리고 민정수석실', 59쪽)

◇초임 수사관의 죽음

수사권 조정의 골자는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고 모든 범죄를 직접 수사했던 검찰의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로 제한하는 것이다. 경찰의 권한을 키워 검찰의 비대한 권한을 견제하는 것으로 지난 2021년 1월 시행됐다. 자부심을 느낀 것은 황 전 행정관만이 아니었다. 경찰 수뇌부는 수사권 조정이 현실화하자 "경찰의 숙원을 이뤘다"며 들뜬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 후로 3년 7개월이 지난 현재, 수사권 조정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최근 경찰관들의 죽음과 맞물리면서 업무 과중을 불러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과거 검찰이 수사하던 것까지 떠맡아 일선 수사관의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윗선'의 사건 처리 압박은 강해졌다고 한다. 경찰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수사권 조정 후 70일까지 늘었다가 올해 5월 59.1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처리 기간이 짧아진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업무 강도가 세졌다는 경찰 수사관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18일 극단 선택으로 사망한 송 모 경위(30대)는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근무했었다. 그는 올해 2월 수사과로 발령받은 후 업무 과부하를 호소했다고 한다. 송 경위가 전임자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은 50건 이상이었다. 처음으로 수사 업무를 하는 송 경위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초임 수사관(송 경위)의 자살 선택 이면에는 경찰 수사 현장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직 수사 업무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수사본부로부터 계속해서 사건을 감축하라는 압박을 받았다."(지난달 29일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기자회견 발언)

경찰의 업무 과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사권 조정 전에도 심각한 수준이었고 업무 과중은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송 경위의 죽음도 오롯이 수사권 조정 때문이라고 단언하듯 얘기하기 힘들다. 과거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생각하면 수사권 조정의 당위성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인력 확충과 근무 환경 개선 같은 일선의 요구는 귀담아듣지 않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당시 여당), 경찰 수뇌부가 검찰 개혁안이자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이다가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사명감 있는 경찰관들의 야심이 꺾이고 있다. 눈앞에 쌓여있는 경미한 사건까지 일일이 처리하다가 기진맥진해 '큰 사건 한 번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수사·기소 분리' 추진하는 조국

지난해 10월에는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으로 경찰의 고소·고발 반려 권한이 사라졌다. 경찰 수사관들은 고소·고발 사건을 거의 모두 처리해야 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현행법상 내가 우리 회사 동료와 언쟁하다가 모욕죄로 고소해도 경찰은 반려할 수 없어 그는 '피의자'로 입건된다. '고소·고발 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경찰의 고소·고발 사건은 40%가량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 때나 지금이나 검찰개혁 적임자를 자처하던 조국 대표는 22대 국회에서 '수사·기소' 분리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권은 신설될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관하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만 맡게 한다는 취지다. 수사·기소 분리가 경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 반대급부로 경찰의 수사권이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수사·기소 분리를 지지하는 경찰관들의 면면을 보면, 주요 사건 위주로 보고받고 지시하되 직접 수사하지는 않는 고위직 경찰관이 다수다. 이들은 과거 검찰 통제 받던 기억을 자존심 상해한다. 반면 일선에서는 수사권 조정으로 가뜩이나 늘어난 업무 부담이 임계점을 넘을까 봐 수사·기소 분리를 반대하는 수사관이 적지 않다.

수사권 조정 합의의 '역사적인 순간'을 공유한 주역들은 '이러다 죽겠다'는 경찰 수사관들의 업무 과중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본인들이 열정적으로 추진한 일에 자부심은 느낄 수 있지만 그 후유증에 대한 책임의식도 한 번쯤 느꼈으면 한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