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방지기본법 국회서 '낮잠'…통합신고대응원 신설도 무산[사기지옥]④
계좌 지급정지 전체 사기로 확대 필요…법 제정 시급
법무부 "실효성 의문" 이견…"왜 사기범 방치하나" 피해자 울분
- 송상현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A 씨는 블로그에서 접근한 일당의 꼬임에 넘어가 부업 사기로 7000여만 원을 잃었다.
처음엔 팀미션이라는 이름으로 단체채팅방에 초대된 사람들과 물건을 공동으로 구매하기만 하면 포인트 형태의 수익금이 쌓이는 어렵지 않은 알바였다. 하지만 점차 구매단가가 올라갔고 A 씨는 결국 수천만 원대 물건을 구입해야 했지만 수익금은커녕 원금조차 되돌려받지 못했다.
A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과 은행을 찾아가 사기범들의 계좌를 지급 정지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이 아닌 투자사기여서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사기방지기본법 발의됐지만…"실효성 글쎄" 법무부 이견으로 불투명
9일 경찰에 따르면 불법 투자리딩방, 로맨스스캠(연애빙자사기) 등 신종 사기 피해자도 금융회사에 사기범이 이용한 계좌의 입출금 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사기방지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현재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의 경우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지만 불법 투자리딩방, 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투자 정보 제공처럼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지급정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방지기본법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의 '용역의 제공·재화의 공급'이라는 단서 조항을 없애 경찰청 소속으로 신설되는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기 범죄에 대해 계좌 지급정지 등 임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기방지기본법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원일치 통과 후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이견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법무부는 지난 1월 법사위에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을 신설하는 것이 사기 범죄 대응의 실효성이 있는지 불분명하다"며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경찰은 대응원을 통해 전체 사기 범죄는 물론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 전의 미수 범죄까지 정보를 수집해 사기 범죄를 사전 차단을 하는 게 목표다. 반면 법무부는 경찰에 정보가 집중되고 권한이 커지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계속해서 경찰 권력의 비대화를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로부터 범죄 피해 신고를 받는 것은 경찰이 유일하기 때문에 경찰이 이 정보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라며 "경찰과 검찰의 권한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사기 범죄가 감소하면 국가적 낭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기범이 빼돌린 내 돈, 왜 방치하나"…사기 검거율 50%도 위협
사기범의 계좌를 지급정지하는 것은 피해금을 보전하고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투자사기 피해자 B 씨는 "경찰에 신고했더니 투자사기라 지급정지가 어렵다고 하면서 '어차피 사기범이 계좌에서 돈을 빼돌려서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런 뻔한 상황을 방치할 게 아니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사기 범죄가 비대면으로 국경을 넘어서 이뤄지는 데다가 범죄 양태가 수시로 변하고 다른 범죄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아 사기범 검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지난 1분기 기준 사기 범죄의 검거율은 50.2%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는 전체 범죄 검거율 73.5%와 큰 차이를 보인다. 2017년만 해도 사기 범죄 검거율은 79.5%에 달했지만 2022년 50%대(58.9%)로 무너진 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의 한 일선서 수사관은 "대포통장, 대포폰을 사용하는 사기범을 추적하는 게 쉽지 않다"며 "피의자를 특정한다고 해도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국제 공조를 끌어내는 것 또한 어렵다"고 말했다.
◇사기통합신고대응원, '사기 순찰' 역할…영국·싱가포르 등 이미 운영
검거율이 떨어지다 보니 사기를 사전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신설이 추진되고 있는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은 사기범 계좌 동결 외에도 신종 사기 유형을 분석해 수사기법을 연구하고 해당 범죄에 취약한 계층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신종 사기 발생 시 대국민 피해 예·경보를 발령하고 안내 자료를 만드는 것도 대응원이 해야 할 일이다.
특히 경찰은 대응원이 설립되면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 전 범죄를 미리 감지하고 지급 정지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자리딩방에 악용된 의심 계좌로 반복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 선제적으로 계좌를 정지하는 식이다. 경찰은 대응원의 역할이 사기를 막기 위해 '순찰'을 도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계속 같은 사기만 치는 게 아니라 투자리딩방 사기를 하고 로맨스스캠도 하는 추세"라며 "더 큰 틀에서 바라보고 사기 범죄에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대만, 홍콩, 사우디 등에서도 이미 사기통합신고대응원과 유사한 기관을 운영하며 사기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사기정보분석국(NFIB)이 영국 전역의 사기 신고를 받아 내용을 분석하고 사건을 배당하는 것은 물론 계좌·전화번호 차단 등을 수행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9년 사기방지센터(ASC)를 설립해 대응한 결과 피해 복구율이 센터 설립 전후로 3%에서 25%로 향상됐다.
경찰 관계자는 "예방·차단 및 피해확산 방지를 전담하는 통합 대응체계 구축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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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터넷 너머 일면식도 없는 인물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곧바로 지옥으로 빠져든다. 경찰에 신고해도 온라인에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 사기 사범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농락할 뿐이다. 올해 1분기에만 사기 범죄는 10만 건을 넘어섰지만, 이중 절반 정도만 경찰의 검거망으로 들어온다. 뉴스1은 최근 폭증하는 비대면 사기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