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첫날 "오늘은 혼란 없었지만…휴진 참여 늘까 조마조마"(종합)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고려대 안암병원 곳곳 '휴진 안내문'
휴진 참여율 저조…병원서 의사들 '피켓 시위'

안석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첫번째)을 비롯한 교수들이 외래 진료 휴진에 들어간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본관 앞에서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 의료개혁 원점 재논의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4.4.3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임윤지 기자 =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예약을 못하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왔어요. 교수님이 휴진 중이어서 며칠 후에 다시 오라네요"

'셧다운'이 시작된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은 장 모 씨 간호사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요양보호사인 장 씨는 자신이 돌보던 80대 남성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평소 진료를 받았던 곳이라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환자 상태가 나쁘니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셧다운으로 담당 교수가 휴진한 탓에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앞서 전국 20여개 의과대학 교수 비대위가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주 1회 휴진'을 결의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 등은 이날 휴진을 결정했다.

이날 방문한 서울대병원에는 "부득이하게 앞으로 진료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곳곳에 붙었다. 다행히 휴진에 참여한 교수들이 많지 않아 예약 취소로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없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명의의 안내문은 "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로 시작한다. 휴진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동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휴진으로 가장 고통을 받게 될 환자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같은 시간 세브란스병원에서는 교수 7명 정도가 '저희는 오늘 4월 30일 하루 휴진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병원 본관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교수의 진료실 앞에는 "불편을 드려 죄송하며 예약 변경이 필요한 경우 ○○과로 문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시민단체 활빈단 관계자가 "의사들은 휴진하지 말고 환자 곁을 지켜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 시민이 "의사들도 입장이 있는데, 시끄럽게 뭐 하는 것이냐?"고 지적하면서 소동이 일기도 했다. 경찰의 제지로 더 이상의 충돌 없이 일단락됐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고려대학교의료원, 경상국립대병원 일부 교수들이 휴진에 들어간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난임클리닉에 휴진 및 진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4.3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불 꺼진 교수 진료실에 환자들 '불안'…발걸음 돌리기도

셧다운 첫날 병원의 환자들은 불이 꺼져 있는 교수 진료실과 텅 빈 병원 복도를 보면서 불안감을 내비쳤다. 일부는 애써 옮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외래진료를 보기 위해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은 80대 여성 손 모 씨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외래 예약을 했더라도 혹시 오늘 진료를 못 받으면 어떡할까 조마조마했다"며 "병원 올 때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매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김 모 씨(70대·남)는 "아내가 지금 입원 중인데 담당 교수가 오늘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다른 교수님이 봐주고 계신다"며 "지난주 입원하자마자 교수들이 학회로 며칠 자리 비우고 오늘은 또 휴진한다. 그러니까 저희도 마음이 어수선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 병동은 더욱 한산한 모습이었다. 같은 과 교수 3명의 방은 모두 불이 꺼져있거나 명패가 빠져있기도 했다. 한 직원은 "차트를 보니 다 학회 가셨거나 개인 사정으로 휴진한다고 적혀있다"면서 "평소보다 사람이 적은 건 아마 오늘 휴진 영향이 좀 큰 것 같다"면서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아기와 병원을 찾은 30대 여성은 "2~3주에 한 번씩 병원 오는데 원래 엄청나게 북적여서 여기 앉을 자리도 없었다"면서 "그런데 이 시간에 이렇게 병원에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오늘이 셧다운하는 날인 거냐"고 되물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대형 병원 일부 교수들이 휴진에 들어간 30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 등이 로비를 오가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고려대학교의료원, 경상국립대병원 교수들이 이날 하루 외래 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의했지만, 실제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4.3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매주 참여 의사 늘어난다면?

환자들은 이날은 참여 의사가 많지 않았지만, 셧다운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매주 점차 늘어나지 않겠냐며 얼마나 장기화할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70대 위암 환자 박 모 씨도 "2월 말에 수술 잡혀있다가 두 달 지나 지난주에 겨우 수술받았다"면서 "저녁마다 교수님이 회진 보러 와주셨는데 오늘은 물론이고 다음 주는 또 어떻게 되려나 모르기에 불안하고 그렇다"고 말했다.

입원 중 외래진료로 변경된 환자들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실제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암 병동 5층에는 2주 전부터 급성 치료가 끝났거나 경증인 환자를 외래진료로 회송하는 상담실이 추가로 운영되고 있었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도 '외래회송'을 위한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현수막이 설치됐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남편이 입원했다가 외래로 바뀌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다급한 상황이 생길 때 즉각 대처가 안 될까 늘 불안하다"며 "어쨌든 교수님들도 힘들겠지만 결국 피해는 환자들이 보는 건데 의정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kxmxs41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