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국내 송환에도 피해 구제는 '난망'…"차라리 미국 보내라"

사기 입증부터 손해액 입증까지 고비 수두룩
피해자들 "피해 구제 어려운 점 알아…미국에서 죗값 받았으면"

24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경찰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연행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몸통인 권도형(34)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확정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선 "미국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다"면서도 실질적인 피해 복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구체적인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데다, 권 씨가 수십조에 달하는 피해액을 물어줄 재산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피해자들은 권 씨의 송환을 반기지 않는 모습이다. "차라기 미국으로 보내, 제대로 처벌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는 한탄도 나온다.

◇ 이르면 이번 주말 국내 송환…피해 구제 '산 넘어 산'

2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법무부는 조만간 한국 법무부에 권 씨의 한국 송환을 공식적으로 통보하고 구체적인 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이르면 이번 주말 권 씨의 한국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권 씨는 2022년 발생한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이다. 당시 테라USD(UST)의 1달러 가격이 무너지면서 루나 코인 가격도 99% 이상 폭락, 전 세계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테라·루나 사태로 인해 전 세계 투자자가 입은 피해는 약 59조원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202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엔 28만명이 700억개에 달하는 루나 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손실액은 조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권 씨의 한국 송환이 확정됐지만, 실질적인 피해 구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국내 사법부는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현재로선 '사기 혐의'를 입증해 손해 배상을 받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혐의 입증부터 쉽지 않다.

박주현 법무법인 황금률 변호사는 "사기 행위를 입증하려면 기본적으로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테라·루나 사태의 경우 사안이 매우 복잡해 기망 행위와 그 인과 관계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지도 난제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매수한 금액은 손해액이 될 수도 있겠지만, 권 씨에게 직접 구매한 게 아닌 만큼 매수 금액을 전부 손해액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사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실제 '집행'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손해배상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사기범이 보유한 재산이 없어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검찰, 2400억원 추징했지만 턱없이 모자라…피해자들 "미국 보내라"

검찰은 권 씨를 비롯해 공범들의 재산 약 2400억원을 추징 보전했다. 검찰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피해자 28만명의 손실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까지 추징 보전한 금액이 오롯이 국내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국외 재산의 경우 미국 등에서 자국 피해자 배상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해외 부동산 등 범죄자들의 재산을 국내로 가져오려면 현지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자국 피해 보상에 사용하겠다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리버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해외 재산에 대한 집행 경험이 훨씬 많다"며 "국내 재산에 대해서도 해외 피해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권 씨의 한국 송환 소식에도 피해자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직장인 이 모 씨(30대·남)는 권 씨의 송환 소식에 기쁜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한국에서 재판받는다 하더라도 루나 코인에 투자해 날린 3000만 원을 돌려받긴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그는 "한국으로 온다고 한들 실질적으로 손실이 회복될 가능성은 절망적이라고 본다"며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서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 모 씨(34·남)도 "손해 배상을 받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지 알고 있어, 시도하고 싶지도 않다"며 "차라리 잊고 다른 투자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