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유행처럼 번진 10대 도박…"청소년 대상 불법사채 성업중"

[도박판의 10대들]③하동진 서울경찰청 청소년보호계장 "실태 경악"
숏폼 콘텐츠처럼 '10초' 안에 승부 갈리는 '바카라·달팽이게임' 유행

편집자주 ...10대 청소년이 마약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도박판도 전전하고 있다. 돈을 날려 돈을 빌리고 그것을 갚지 못해 보복 위협을 당하는 것은 온라인 도박판에 매달린 10대들의 흔한 사례이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도박 문제로 검거된 청소년 수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은 이번 설 연휴 '도박판의 10대' 실태를 세 꼭지에 걸쳐 보도한다.

하동진 서울경찰청 청소년보호계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3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최근 몇 년 사이 도박이 학교 폭력 원인이 되는 사례가 급증했다. 학교 폭력 신고 채널로 접수된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청소년 범죄가 늘었다. 도박 빚 때문에 청소년 대상 불법 사채와 대출도 성행하고 있다."

하동진 서울경찰청 청소년보호계장(44·경정)은 "스마트폰이 생기고 학교 폭력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전국 경찰 중 처음으로 '청소년 도박 대응 집중 활동'을 벌였다. 교사나 학생들을 통해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 계기가 됐다.

◇틱톡·쇼츠 유행처럼 번지는 '더 짧고 강렬한 도파민'

하 계장은 아동·여성·청소년 분야 경력만 합산 1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경찰이 2013년 도입한 학교전담경찰관(SPO) 제도의 명칭부터 체계를 마련하는 실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서울 지역 SPO 133명을 관리하고 있다. 하 계장은 최근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학교 폭력 양상도 달라졌다고 꼬집었다.

"예전 학교 폭력은 단순히 돈이나 물건을 뺏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IT 기술과 함께 진화했다. 스마트폰이 들어오면서 청소년만 하는 범죄는 없어졌다. 마약을 비롯해 최근에는 도박 문제가 크다."

하동진 서울경찰청 청소년보호계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3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스마트폰은 도박판의 진입 장벽을 낮춰줬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도박장이 청소년들의 손위에 펼쳐졌다. 수백만원의 빚에 허덕이면서도 더 큰 도파민을 찾아 돈을 따는 원초적 쾌락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청소년 도박은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숏폼 콘텐츠의 유행과 맥을 같이 한다. 하 계장은 "청소년 도박 유형을 살펴보면 '바카라'나 '달팽이 게임' 등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게임을 좋아한다"며 "예전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포츠 토토' 대신 10초, 5초 만에 결정이 나는 빠른 게임이 유행"이라고 설명했다.

바카라는 카드를 배부해 합이 '9'에 가까운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달팽이 게임은 경주에서 1등을 하는 달팽이를 맞추는 도박이다. 둘 다 단시간에 승부가 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경찰청과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방치유원)의 청소년 도박 분석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84명 중 64.3%가 바카라·달팽이 게임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 계장은 "공급자들이 요즘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분석해 트렌드를 따라간다"며 "자극적이고 빨리 결정 나는 도박이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불법 도박 업체 입장에선 단기간에 돈을 바짝 벌고 수사망이 좁혀지기 전에 빠져나가기에도 좋다.

또 "공급자들은 어린 나이에 도박에 빠질수록 평생 고객으로 붙잡을 수 있기 때문에 10대들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청소년 도박 문제는 학교 폭력 등 2차 범죄로 이어진다. 온라인 도박을 위해 불법 사채를 쓰고, 채무 상환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식이다. 또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 배달이나 보이스피싱에 손을 대거나 빚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검거 중심 패러다임 변해야…청소년 맞춤형 예방 활동 필요"

이처럼 청소년 도박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경찰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7일 ‘도박 범죄’ 척결을 선언하며 청소년 중심 사이버 도박 확산을 막기 위해 광고 차단, 불법 사이트 운영자 및 범죄 조직 추적·검거에 역량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거나 처벌 중심 대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차단해도 해외에 서버를 둔 업체들이 이를 쉽게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 계장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 도박이나 마약은 장소나 판로가 정해져 있어 공급자를 경찰이 관리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온라인에서 불법 사이트를 만들고 없애는 게 쉽기 때문에 수많은 공급자를 경찰이 다 감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급자 처벌 위주에서 예방 중심으로 수요자를 줄일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청소년은 중독에 빠진 지 얼마 안 됐고, 학교라는 강력한 울타리가 있다. 타기팅을 통해 도박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골든 타임일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하동진 서울경찰청 청소년보호계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3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이는 서울경찰청이 예방치유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청소년 도박 예방 및 치유 체계 구축에 나선 이유다. 서울청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84명을 예방치유원 치료·상담 프로그램에 연계했다. 그 결과 이들 중 81%의 청소년들이 재범 없이 일상에 정상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청은 청소년 맞춤형 도박 예방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예방치유원과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도박에 빠질 위험성이 높은 중3~고1 남학생 등을 중심으로 맞춤형 교육에 나설 방침이다. 또 프로그램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청소년 경찰학교와 연계한 권역별 치유 출장을 추진한다.

하 계장은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치유의 사이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인 효과를 두려워해 치유 시기를 놓치면 기회비용이 더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본인 스스로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건 정말 힘들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친구 등 주변에서 상담과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경찰도 도박에 빠진 청소년에 대해 처벌 위주로 가지 않을뿐더러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고하고 상담하고 알리는 게 도박 문제 해결의 첫 시작이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