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곧 A교사다"…서이초 사건 4개월,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는
서이초 사건 결국 '내사 종결' 일단락…경찰 "범죄 혐의 없다"
교육계 "교권 회복" 목소리 내며 제도 변화 이끌어…음모론 '여전'
- 서상혁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경찰이 서이초등학교 1학년 교사의 극단 선택 배경으로 지목된 학부모 갑질 의혹에 대해 4개월 만에 내사 종결 처리했다. 갑질 당사자로 지목된 학부모를 처벌할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교사노조는 이른바 '연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인이 학부모로부터 폭언 등 갑질을 당했다고 의혹을 제기해 왔는데, 경찰은 실체가 없는 의혹이라 판단한 것이다.
비록 갑질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서이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교권 침해'라는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이초 사건으로 전국의 교사들이 너도나도 교권 침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고, 그 결과 '교권 4법'이 국회 문턱을 넘는 등 일부 성과도 있었다.
'음모론' 역시 서이초 사건이 사회에 던진 숙제다. 사건 초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부모의 폭언이 있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하면서, 대중이 실제 범죄가 발생했다고 믿는 확증 편향으로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갑질의 배후로 지목되는 등 마녀사냥이 동반하기도 했다.
◇경찰 내사 종결하지만…"'교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
서울 서초경찰서는 14일 서이초 사건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이초 연필 사건 관련 입건 전 조사(내사)'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내사란 실제 범죄 혐의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일종의 초기 수사로, 혐의가 발견될 경우 정식 수사로 전환된다. 내사를 종료했다는 뜻은 범죄 혐의로 볼만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송원영 서초경찰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교 부임 이후 학생 지도 문제, 연필 사건 중재 문제, 개인 신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에서 제기된 학부모의 괴롭힘이나 폭언, 강요 등과 같은 행위가 있었는지 면밀히 조사했으나 범죄 혐의로 볼 수 있는 내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서이초 사건이란 지난 7월18일 오전 학교 학습준비실에서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으로 타살 혐의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극단 선택'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이에 교사노조는 성명을 내고 반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긋는 등 이른바 '연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인이 학부모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의혹이 본격 확산했다.
4개월 만에 실체가 없는 의혹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렇다고 의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에 만연해 있는 '교권 침해' 문제를 수면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전국의 교사들은 종로, 여의도 등 도심에 모여 정부와 국회에 '교권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와 학생의 권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탓에,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등 교권 침해 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주장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이초 사건은 '교권 침해'라는 문제에 대해 사회과 공감을 시작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교사들이 연대하는 한편, 학부모와 학생도 교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교사들의 요구에 국회는 지난 9월 교권 보호 4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을 통과시켰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 지도는 아동학대로 여기지 않고,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이 담겼다.
서이초 사건을 내사 종결한 서초경찰서도 제도 개선을 지원하는 차원서 조사 중 청취한 교사들의 애로 사항을 '제도 개선 참고 자료'로 만들어 서울시교육청에 전달할 예정이다. 학부모 민원 창구를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라는 기관으로 일원화하고, 교장이나 교감을 교사들의 전담 상담사로 지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음모론은 '여전'…전문가 "대중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해결책"
4개월에 걸친 경찰의 고강도 조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아직 '음모론'이 확산하고 있다. 대체로 경찰의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날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두고 "조용하다 싶으니 그냥 덮는구나"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는지 의문" "교사를 죽음으로 몬 학부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글이 쏟아졌다.
사실 서이초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은 초기부터 쏟아졌다. '배후에 누군가 있다' '폭언이 확실히 있었다' '해당 학부모 때문에 고인이 힘들어했다'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과정서 연필 사건 관련 학부모의 신상이 무분별하게 공개돼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실상의 '사적제재'가 이뤄지기도 했다. 사건의 배후에 여야 중진급 의원이 개입돼 있다는 가짜 뉴스도 퍼졌다.
정당한 의혹 제기는 경찰이 더 면밀하게 수사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 준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있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은 수사 범위를 고인이 작년에 맡았던 학급까지 넓히기도 했다. 다만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음모론으로 발전할 경우 마녀사냥 등 2차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전문가들은 서이초 사건같이 관심이 큰 사안에 대해선 경찰과 대중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내사 종결 처리를 하기 위해선 내부적으로 '왜 혐의가 없는지'에 대한 근거를 확실하게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며 "왜 종결을 해야 하는지 경찰이 입증을 해야 하는 만큼, 내부적으로 소위 '뭉개는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이슈에 대해선 경찰이 지속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경찰에 대한 신뢰를 높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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