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감성 가장 힙하죠, 영어론 안돼"…한글 이름 고수하는 사장님들

577돌 한글날 '외국어' 간판 홍수 속 '한글 간판' 주목
전문가 "한글 서체·색상 조합 등 개발 통해 퀄리티 높여야"

서촌과 을지로 등 서울 주요 도심에서 볼 수 있는 한글 간판. 2023.10.09 ⓒ 뉴스1

(서울=뉴스1) 김예원 정지윤 기자 = "한글이 주는 감성이 '힙'하다고 하더라고요. 메뉴판도 한글 모양을 살려 직접 쓴 이유죠."

지난 6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의 문래 창작촌 거리. '레트로'(복고풍) 감성으로 젊은이들이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박모씨는 간판뿐만 아니라 메뉴판, 입간판까지 한글로 만들어 운영한다.

박씨는 "문래 골목의 매력이 예전 모습을 잘 보존하는 것에서 오는 만큼 영어 대신 한글 간판을 고수하려는 것도 그 이유"라면서 "손님의 90% 정도는 2030일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라고 전했다.

이날 친구와 함께 창작촌 거리를 방문했다고 말한 20대 이모씨는 "한글 간판과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들을 배경으로 골목 사진을 찍으면 분위기 있게 나와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간판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577돌 한글날을 맞아 독특한 멋을 뽐내는 한글 간판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곳은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사투리, 자음과 모음 등이 주는 한글의 '힙함'과 소통 편의는 다른 언어로는 '대체 불가'라고 입을 모았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한글 간판이 줄지어 설치되어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9일 뉴스1 취재진이 '힙지로'(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인근 골목),문래 창작촌 등 젊은 세대들이 자주 방문하는 거리를 방문해 주요 번화가 간판들을 살펴본 결과, 가게 10곳 중 6~7곳은 한글 표기 없이 영어, 일어 등 외국글자만 표기한 간판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글이 표시된 곳은 외국 글자와 병기한 곳을 포함해도 3곳 중 1곳 정도에 불과했다.

그 속에서도 일부 가게들은 한글로 디자인된 서체 간판을 유지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부 간판은 한글의 자음만 남겨두는 등 서체의 디자인적 요소를 활용한 모습도 눈에 띄였다. 이들은 사투리 등에서 오는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힙지로'(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인근 골목)에서 고기집을 운영하는 50대 안모씨는 "가게 이름의 모티브를 제주 사투리에서 따와 일부러 영어 간판은 선택지에서 제외했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간판 등을 보며 한국적이라고 신기해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마을 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김모씨는 "경복궁 등과 인접해 한국적인 요소를 더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한글 간판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적 요소 때문에 한글 간판을 선택했다는 사장님도 있었다. 문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20대 윤모씨는 "'커피'라는 글자를 한글로 썼을 때 만들어지는 각진 서체가 카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금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 창작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한글 간판 및 메뉴판. 2023.10.09 ⓒ 뉴스1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외국어 간판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고령층 및 유아들을 중심으로 가게 상호명을 분별하거나 메뉴 이름을 읽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젊은 사람들은 영어에 서툰 사람이 적어 편하겠지만 아무래도 내 나이쯤 되면 불편한 점이 있다"며 "작게 한글로라도 써주는 식으로 배려가 동반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최근 국내에선 외국어카페 등 일부 음식점에선 식당 상호명을 영어 불어 등 외래어로만 적거나, '미숫가루'처럼 한글 지시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MSGR' 등의 메뉴 표기를 유지하고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디자인,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한글 간판이 유지되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같은 현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기 위해선 서체 개발 등 디자인적 요소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간판은 도심의 문화적 전체성 및 경관 등을 한 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같은 변화는 긍정적"이라며 "디자인의 다양화 등을 통해 한류의 또다른 멋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 간판 구역 등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소비자들에게 소구하기 위해선 한글 간판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색상, 서체 디자인 등을 다양화해 간판에 적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