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누운 주취자는 이렇게"…경찰 매뉴얼 있었지만 작동 안됐다
경찰청 '보호조치 업무 매뉴얼'에 주취자 처리 절차 나와
보호자 인계하거나 지구대 보호조치가 순서였지만 '위반'
- 송상현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술에 취한 시민이 연이어 사망한 사고에서 해당 경찰들은 현장 대처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다는 경찰 일각의 목소리와 달리 도로에 누운 주취자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있었던 셈이다.
경찰이 부실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매뉴얼의 보완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5일 뉴스1이 입수한 경찰청 생활질서과의 '보호조치 업무 매뉴얼'에는 도로에 누워 있는 단순 주취자에 대한 처리 요령이 사례 1번으로 상술돼 있다.
매뉴얼은 주취자의 상태를 평가한 후 구호가 필요한 경우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고 그렇지 않다면 안전한 장소로 이동 조치하도록 한다. 또한 주취자에게 연고자(보호자)를 물어보고 대화가 안 될 때는 휴대폰과 주민등록증, 명함 등 소지품을 이용해 보호자에게 신병을 인계하게끔 적혀있다.
만약 범죄 피해와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단독으로 귀가시킬 수 있다. 연락처가 확인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위험할 것으로 판단될 때는 일단 지구대·파출소로 이동해야 한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서 발생한 주취자 사망사고에선 경찰의 지침 위반이 다수 발견된다. 당시 출동한 휘경파출소 소속 2명의 경찰관은 6분간 주취자 A씨를 일으키려 하고 대화도 시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건너편 길거리에 세워둔 순찰차에서 대기하며 7분가량 A씨를 지켜봤다.
경찰관들은 A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뿐더러 연락처를 찾아 보호자에게 신병을 인계하거나 파출소로 함께 이동하는 등의 처리 요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순찰차에서 주취자를 지켜보는 건 매뉴얼에도 없는 내용으로 사실상 방치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결국 A씨는 몇차례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한 골목의 입구 쪽으로 다시 나와 드러누웠다. 잠시 후 한 승합차가 A씨를 밟고 지나갔고 A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는 중 사망했다.
지난해 11월30일 새벽 술에 취한 60대 남성 B씨가 경찰 보호를 받은 이후에 숨진 사고에서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인사불성이 된 60대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B씨를 집 앞 계단에 앉혀두고 지구대로 돌아왔다. 이후 B씨는 한파로 인해 약 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B씨의 집 근처까지 함께 오는 등 주취자의 안전을 위해 나름의 조치를 했지만, 매뉴얼대로 라면 보호자 인계까지 마무리돼야 했다. 보호자와 연락에 실패했다면 지구대에서 보호하는 게 지침이다.
잇따른 주취자 사망 사고 이후 경찰청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선 데는 해당 경찰관들의 매뉴얼 위반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경찰청은 휘경파출소 경찰관들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미아지구대 경찰관 2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윤희근 청장도 1일 휘경파출소를 방문해 "안타까운 마음이고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선 하루에만 1000건이 넘어서는 주취자 관련 신고에 피로감을 느끼며 개선책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특히 지구대 외에는 마땅히 주취자들을 보호할 시설이 없다는 게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지구대로 데려오면 최소 경찰 1~2명은 이들을 케어하는데 시간을 보내 한다"며 "이렇게 되면 정말 중요한 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에 인계할 수도 있지만 '주취자는 환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부당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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