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없다고 방치했나…또 씁쓸한 명절 맞는 '초안산 분묘군'
훼손된 무덤에 방치된 석물까지…전문가 "관리 부실"
지자체·문화재청은 책임 핑퐁…구의회·국회가 나설 듯
- 조현기 기자
(서울=뉴스1) 조현기 기자 = "후손 없다고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 겁니까."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는 손모씨(30)는 초안산을 산책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손씨는 "동네 뒷산이어서 산책을 자주 하는데 무덤과 비석이 훼손돼 있어 좋지 않다"며 "조상이 아니라고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냐"고 고개를 흔들었다.
도봉구와 노원구에 걸쳐 있는 초안산에는 내시를 비롯해 조선시대 양반과 서민 등의 분묘 1000여기가 넓게 분포해있다. 특히 많은 것은 내시의 무덤이다. 내시의 무덤은 대부분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죽어서도 왕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까지도 가을이면 제사를 지냈다. 초안산 분묘군은 조선시대 묘제와 석물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 자료여서 2002년 사적 440호로 지정됐다. 그래서 노원구는 '노원9경', 도봉구는 '도봉역사문화길'(3길)로 정해 지역 명소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뉴스1이 지난 1년 동안 초안산 분묘군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 지역 대표 명소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무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역사학적 가치를 평가받은 석물들도 부서지거나 땅에 꽂혀있거나 방치돼 있었다.
◇ 훼손된 무덤, 방치된 석물…문화재 전문가 "관리 부실"
훼손된 무덤은 창1동 주민센터에서 초안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특히 많다. 지난해 8월 수도권 집중호우 이후 길 옆 무덤의 흙이 많이 흘러내렸다. 가운데가 뻥 뚫려 내부가 훤히 보이는 무덤도 여럿이다. 훼손된 무덤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월계고 옆 비석골근린공원에서 초안산 헬기장까지 이어진 산책로에도 무덤과 석물이 많다. 그러나 월계고 뒤 다소 경사가 있는 곳의 무덤은 낙엽에 무성히 덮여 있다. 바로 옆 현대의 가족묘가 깔끔하게 관리된 것과 대조적이다.
신창초등학교와 창3동 주민센터 뒤 무덤 사이 산책로를 지나는 주민도 많다. 초안산에서도 무덤이 특히 많은 곳인데 봉분이 심하게 훼손된 것이 많다. 석물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재운 전주대 명예교수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현재 문화재위원으로 문화재보호구역 및 사적지 지정, 사적지 인근 건축물·공원 설치 등을 연구·조사·심의하고 있다.
이 교수는 "초안산 고분군의 역사성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인식도 부족한 것 같다"며 "사적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 지정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로 책임 미루는 도봉구·노원구vs문화재청
중앙정부(문화재청)와 지자체(도봉구·노원구)는 초안산 분묘군의 관리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은 서로 떠넘겼다.
문화재청은 예산 수십억원을 배정한 만큼 관리는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도봉구와 노원구는 예산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은데다 적극적인 관리를 하려면 문화재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봉구 관계자는 "사유지에 있는 분묘 관리의 예산이 문화재청에서 오지 않았다"며 "초안산 분묘군이 왕릉이나 보물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청의 관심이 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봉구는 문화재를 보수하고 관리할 의지가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문화재가 훼손됐어도 지자체가 마음대로 보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원구 관계자도 "예산이 일부 내려오긴 했으나 충분하지 않다"며 "현재는 분묘 1기 옮기려해도 하나하나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노원구는 정비계획을 수립해 일부 내시묘에 대해 정비를 실시했고, 매년 예초작업을 통해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며 "사유지 매입을 꾸준히 추진하여 1필지만 남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명확하게 현장을 파해 문화재청 및 도봉구와 긴밀히 협조해 사적이 방치되지 않도록 적극 관리해 나가도록 하겠다"며 "문화재청이 권한과 예산을 자치구에 더 이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유지를 지속적으로 매입한 결과 국공유지가 초안산 사적지 11㏊ 중 7㏊로 늘었다"며 "지자체가 사유지를 매입하면 올해 국비 64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노원구와 도봉구가 초안산 사적지를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라고 서울시를 통해 말했다"며 도봉구와 노원구의 관리 소홀 책임이 크다는 입장을 취했다.
◇ 도봉구의회 2월3일 현장답사…국회, 문체위에서 다룰 것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핑퐁게임에 구의회와 국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도봉구의회는 오는 2월3일 초안산 분묘군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창 1,4,5동을 담당하는 이호석 도봉구의원은 "지역주민들도 초안산 분묘군 쪽에 다니길 꺼리신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월3일 임시 정례회 끝나자마자 초안산 분묘군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하고, 문화재청 쪽에 현상변경 등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역설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인재근 의원(도봉구갑)은 "오랫동안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국가 유적을 방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설날을 맞아 분묘군에 있는 선조들이 차가운 땅에서 얼마나 통탄하시고, 지역주민들도 얼마나 불편이 많았겠냐"며 "기재부, 문화재청, 도봉구, 노원구 등이 초안산 분묘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각 행정기관들이 예산 문제로 해당 문제를 핑퐁싸움해서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저희 국회차원에서 감시·감독을 꾸준히 할 것"이라며 "도봉구민들과 시민들께서도 초안산 분묘군의 역사성과 그 의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회 차원에서도 해당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2월 임시회가 열리게 되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재청에 현안 질의를 넣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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