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회복에 좋다는 한방차 마셨는데 '쇼크사' 직전까지…일상 침투 '몰래뽕'

[이승환의 클로즈업]민용석 용산서 마약범죄수사팀장
"10대부터 80대까지 범죄에 노출…'보디패커'에 충격"

민용석 용산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장(58·경감)이 20일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0.2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조현기 기자 = 80대 A씨는 지난해 여성지인 몇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A씨는 "피로 회복에 좋다"며 한방차를 권유했다. 여성들은 차를 마신 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피해자들은 '쇼크사' 직전까지 갈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상당한 양의 필로폰을 한방차에 몰래 탄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몰래 뽕' 수법이다. A씨는 동남아에서 마약을 구해 한국에 들여왔으며, 여성들의 환심을 사고자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해 A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외국에서는 마약류 거래가 비교적 자유로워요. 해외 클럽에서 마약이 흔하게 유통되고 있죠. 여행이나 유학, 파견 등 해외 체류하는 사람들 중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한국 와서도 마약 범죄를 일으키는 것이죠."

지난해 A씨 사건을 수사했던 민용석 서울 용산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장(58·경감)의 말이다. 1991년 순경으로 입문한 민 팀장은 경찰 생활 30여년 중 마약 범죄만 10년째 수사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용산경찰서 회의실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마약의 심각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마약 100g 이상 몸속에 숨겼다가 사망"

"해외에서 마약을 직접 '공수'하는 사범들이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근 발생한 '보디 패커' 사건은 베테랑 민 팀장도 충격 받게 했다.

지난 9월 용산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50대 남성의 위장 등에선 잘게 나눈 비닐이 나왔다. 필로폰 등 100g 이상 마약이 비닐 안에 들어 있었다. 이 남성은 사망 하루 전인 9월24일 동남아에서 입국했다.

"보디 패커란 몸속에 마약을 넣어 옮기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양의 보디 패커는 사실상 처음이었죠. 보통 필로폰 1g이 33회 투약분입니다. 가격은 1g에 70만~100만원인데 100g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죠.”

마약류 밀수입은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는 강력 범죄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58조 1항은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한 자 등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무엇보다 보디패커는 죽음을 불사한 행위나 다름없다. 사람의 위산은 강하게 '녹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마약류가 든 얇은 비닐 포장지를 녹여 구멍을 만들거나 터트릴 수 있다. 포장지 밖으로 흘러나온 마약은 장기에 심각한 손상과 쇼크를 가한다.

"마약을 몸에 지닌 채 운반하면 안전하다는 것은 완전히 그릇된 인식입니다. 주로 항문이나 성기에 숨겨 옮기는 경우가 많는데 보디패커는 매우 위험해요. '마약은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예요. 마약류 범죄의 피해자는 바로 국가와 사회입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의 필로폰(3kg)을 밀수입하고 국내에서 유통시킨 피의자 등 8명을 검거, 그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통조림 속에 있던 필로폰 총 3.54kg. (서울경찰청 제공) 2022.10.26/뉴스1

◇"평범한 공간서 '몰래 뽕'…우리 일상 가까이"

윤희근 경찰청장은 8월10일 취임한 후 국민 체감 2호 약속으로 '마약 범죄 소탕'을 제시했다. 마약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은 최근 두 달간 유흥업소 일대 마약류 사범 148명 등 총 2121명을 검거하고 그중 348명을 구속했다.

민 팀장은 "마약이 음지에서 유통되던 시대는 지났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신고받고 클럽이나 술집으로 출동하잖아요. 겉으론 보기엔 '마약 느낌'이 잘 들지 않아요. 흔하고 평범한 그런 곳에서 '몰래 뽕'을 타는 거예요. 거기 갔던 손님들이 '10병 마신 것'처럼 취했거나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며 업소를 신고하죠."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SNS)에서 '검색'만으로 마약을 구할 수 있을 정도다. 아이X, 얼X, 캔X 등 은어를 입력해 마약상과 메시지를 주고 받은 뒤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한다.

던지기 수법이란 중간책이 주택가와 실외기 등 특정 장소에 마약을 놓고 가면 구매자가 그걸 몰래 가져가는 것이다. 마약 구매가 쉬운 만큼 단순 호기심으로 마약을 했다가 중독된 일반인이 적지 않다.

"미성년자가 던지기 수법에 가담한 사례까지 있습니다. 투약이 아닌 마약 운반을 하는 '중간책' 역할을 한 거죠. 잠복근무로 그 녀석을 잡았는데, 참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미성년자인 10대부터 나이 든 80대까지 마약 범죄에 노출돼 있어요."

◇"위장수사 법제화 필요"

경찰은 마약 범죄로 위장수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판례상 범의유발형 위장수사는 위법으로 간주되고 기회제공형은 적법한 수사 절차로 인정되는데 범의유발형도 허용하는 방안을 살피고 있다.

요컨대 범의유발형은 마약 구매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접근, 범죄를 유도해 검거하는 방식이다. 기회제공형은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마약을 판매할 것처럼 접근해 검거하는 식이다. 다만 수사관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는 격이라 범의유발형 허용에 신중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법제화라는 지적도 많다. 일단 법적근거가 있어야 일선 수사관들이 적극 위장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장수사는 언제든 불법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법적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는 있다는 지적이다.

민 팀장은 "지금도 위장 수사를 하고 있지만 법제화할 경우 수사관들이 부담을 덜고 더 적극 수사할 것"이라며 "실무 차원에서 위장수사 법제화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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