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조용히 해달라" 말했을 뿐인데…결과는 참혹한 살인 왜?

정신과 진료 거부한 뒤 망상 심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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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영화 '조커'는 외톨이 남성 아서 플렉이 배트맨의 숙적 조커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극중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는 시의 예산 삭감 정책으로 치료를 중단해야 했다.

이 영화는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그가 치료 중단 후 도심 폭동의 리더이자 살인마 조커로 치달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서의 정신질환 증세가 통제 불능 수준으로 악화했다는 것이다.

30대 남성 A씨는 지난 2020년 4월부터 한달간 수도권 소재 병원에서 편집분열성 조현병 등으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는 같은해 10월까지 한 달 간격으로 통원 치료를 받다가 이후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이후 그의 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그즈음 A씨는 자신의 거주지 이웃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70대 노부부인 B씨와 C씨가 "집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노부부가 하나님을 파괴해 자신이 고통받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부러진 나무 십자가를 들고 노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A씨는 B씨가 문을 열고 나오자 둔기로 무차별 폭행했다. 도망가려던 C씨에게도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B씨는 숨졌고 C씨는 크게 다쳤다.

신고자는 A씨 어머니인 D씨였다. D씨는 "밖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 나와보니 아들이 난리가 났다. 아들이 정신질환이 있으니 빨리 와달라"며 112에 신고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A씨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범행 정황과 증거 등을 고려해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고 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현행범 체포 후 범행 동기와 수법, 대화내용 등을 기억하고 있어 심신상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다만 조현병이 있는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자살예방센터장)는 "모든 조현병 환자가 A씨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치료 중인 환자의 위험성은 극히 낮지만 급성기에 이른 조현병 환자는 망상과 환청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 교수는 "영화 '조커'를 현실 사건과 연결하고 싶지 않지만 조현병 환자가 약물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진주 방화살인사건' 등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