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고 "꽃뱀" 무고 협박 시달리다 숨진 아내, 남편 분노

성폭행범에게 '무고죄 맞고소' 협박에 시달리던 아내가 생전 유서 형식으로 남긴 영상. (JTBC '사건반장')
성폭행범에게 '무고죄 맞고소' 협박에 시달리던 아내가 생전 유서 형식으로 남긴 영상. (JTBC '사건반장')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아내가 성폭행범에게 되레 '무고죄로 역고소하겠다'고 협박당해 숨졌다며 분노한 남편의 사연이 전해졌다.

1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제보자인 20대 남성 A 씨는 지난해 결혼한 뒤 지난 1월 갑자기 아내를 잃었다. 친구들과 1박2일 여행을 마치고 A 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쓰러져 있었고 결국 사망했다고.

A 씨도, 아내의 어머니도 갑자기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허망해하고 있던 가운데 장례식장에 찾아온 고인의 친구들은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지난 2022년 아내가 알고 지내던 두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

하지만 두 가해자는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불기소 결정을 받았고, 지난해 9월부터는 가해자 중 한 명이 아내에게 "너를 꽃뱀으로 역고소할 것"이라고 협박해왔다고 친구들은 전했다.

이를 들은 A 씨는 아내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의 휴대전화를 살펴봤는데, 휴대전화에서는 유서와 같은 영상이 나왔다.

영상에서 아내는 울면서 "걔가 나한테 협박했다. 나를 꽃뱀으로 고소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인 건 알아. 억울하다"라며 "남편은 몰라야 하는데. 여보 혼인무효 소송하고 새 삶 살아"라고 걱정을 쏟아냈다.

영상을 본 A 씨가 자세히 알아보니 아내의 불행이 시작된 건 지난 2022년 4월 7일이었다. 이날 아내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당시 아내까지 포함해 여성 2명, 남성 2명이 함께 놀던 중 일행은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성 2명은 아내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는데, 아내의 친구가 먼저 집에 돌아가자 두 남성은 "그 친구 곧 다시 올 거다. 근처 모텔 가서 술 더 마시자"고 거짓말하며 아내를 모텔로 유인했다.

아내는 당시 만취한 상태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텔 안이었다. 아내는 집에 가려고 했지만 두 남성은 아내를 강제로 붙잡아 차례대로 성폭행했다. 이후 집에 돌아간 아내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를 받은 날,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일을 오래 끌고 가면 더 힘들 것 같아 당시 2명으로부터 각각 1500만 원씩을 받고 합의서를 써줬다.

2023년 7월 검찰은 두 사람의 강간 혐의에 대해 "동의 없는 성관계로 보이나 폭행이나 협박 증거가 없으며 당사자 모두가 술에 취해 기억도 명확하지 않다"며 불기소를 결정했다.

성폭행범이 아내에게 보낸 협박 메시지. (JTBC '사건반장')
성폭행범이 아내에게 보낸 협박 메시지. (JTBC '사건반장')

이후 가해자 중 한 명은 지난해 9월부터 아내에게 연락해 "나 지금까지 역고소 준비했다"며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돈을 달라"고 협박했고, 아내는 이 사실을 차마 엄마와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친구에게만 알렸다.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아내는 협박에 두려워하며 아르바이트 월급 200만 원 중 100만 원씩을 가해자에게 보냈다. 그렇게 350만 원을 받아 챙긴 가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의 이름을 대며 두 명 다 돈을 받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고인은 생전 친구들에게 "남편이 알까 봐 너무 두렵다"고 고민을 토로했고, 휴대 전화 기록에는 "이 일을 남편은 평생 모르게 해달라"는 내용도 발견됐다.

아내 사망 후 모든 걸 알게 된 남편은 아내를 대신해 가해자를 강간등치상, 공갈, 공갈미수 등으로 다시 고소했다.

사연에 대해 양지열 변호사는 "만약 정말 무고였다면 가해자가 애초에 합의서는 왜 작성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의아해했고, 박지훈 변호사도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며 "현재 녹음과 영상 자료 등으로 봤을 때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 보인다"고 의견을 전했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