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비상계엄 앞에서 엇갈린 두 행정부 2인자

한덕수 '재판관 임명 보류'로 탄핵…계엄에 사표 낸 김성수와 대비
헌정사 초유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최상목의 결단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24.12.26/뉴스1 ⓒ News1 청사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 서류 수령을 거부하며 버텼지만 헌법재판소의 첫 변론준비기일은 진행됐다. 윤 대통령의 심판 지연을 향했던 비판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조준했고, 끝내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이란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 대행은 여야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선택적으로 행사했다. 양곡관리법 등 쟁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행사하지 않았다. 내년 4월 대통령 추천 몫 재판관 2명의 퇴임도 예정돼 있어 심판 지연 우려만 한층 커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다며 자책했던 모습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법조계에선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지명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국민 여론은 한 대행 생각과 정반대였다. 12월 3주 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응답자 68%가 신속한 탄핵 심판을 원했다. 헌재가 지금처럼 '6인 체제'로 운영된다면 탄핵 심판 심리는 가능하지만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 요구에 반하는 한 대행을 향해 야권은 탄핵소추안을 꺼내들어 통과시켰다. 법적 하자 없는 헌법재판관 임명권 발동을 미룬 결과는 더 큰 국정 마비였다.

"난 단 하루도 이 정부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에 설치된 인촌 김성수 동상. 김성수는 이승만 정부 시절 2대 부통령 역임하다가 1952년 이른바 부산정치파동 직후 사임서를 제출했다 . 2017.2.2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72년 전 행정부 2인자 김성수 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한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자 사표를 던졌다.

김 부통령은 사임서(2대 국회 본회의 속기록. 1952년 5월 29일)에서 "조건이 하등 구비되지 않은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허무맹랑한 누명을 날조해 계엄 하에서도 체포할 수 없는 국회의원을 체포·감금하는 폭거를 감행했다"면서 "국헌 전복의 반란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이어 "앞으로 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 나라에 가져오도록 국민 대중과 결사 분투할 것을 맹서한다"고 밝혔다.

행정부 2인자로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부당함에 사표라도 내던진 김성수의 결단과 '여야 합의'를 내세운 한 대행의 우유부단은 대조적이다.

공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넘어갔다. 최 대행에게 김성수와 같은 결단이 있을까. 국민 여론은 앞선 대행이 바란 '여야 합의'를 기다릴 만큼 너그럽지 않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