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자' 이어 계엄에도 등장한 '명리학'…어쩌다 '정치'와 결합했나

조선시대부터 명리학 관료 있었지만…'국익' 우선
사익 좇는 '미신 결합' 명리학…후진 정치 문화 반영

'롯데리아 내란 모의'를 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역술인으로 활동하면서 점집을 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2024.12.2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의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무속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속 정치' 논란이 거세다. 사람이 태어난 때를 토대로 운명을 내다보는 명리학이 미신적 요소와 섞이면서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명리학을 학문으로 다루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명리학이 지나치게 변질됐다고 토로한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 기획한 것으로 의심되는 핵심 인물이다. 노 전 사령관은 불명예 전역한 뒤 경기도 안산에서 무속인으로 활동하며 점집을 운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계엄과 관련해 '올해 윤 대통령의 운이 트이니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조언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천공 건진법사 명태균 노상원…정치권 계속되는 무속, 비선 실세 논란

정치권에서 무속, 비선 실세 논란이 일어난 것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윤 대통령과 교류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받는 명태균 씨와 '건진법사' 전성배 씨도 일제히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다. 명 씨는 '지리산 도사'로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던 역술인 '천공'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손바닥에 대선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토론회에 나온 것이 그의 조언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상원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2024.12.2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들 대부분은 명리학이 아닌 무속 신앙에 가깝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을 분석해 길흉화복을 내다보는 학문이다. 흔히 사주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해석 체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누가 풀이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인도 관련 공부만 한다면 사주풀이가 가능하다.

반면 '신점'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만 볼 수 있다. 신이 점을 쳐준다는 뜻이다. 태어난 생년월일과 시를 알지 못해도 오직 신기로만 미래를 예측한다. 소가죽을 벗기는 굿을 치른 것으로 알려진 건진법사도 무속의 영역에 가깝다.

명리학과 무속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미신'으로 묶여 상당 부분 혼동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무속·비선 논란'이 거세지면서 명리학을 미신, 사이비 종교로 싸잡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명리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명리학이 변질된 채로 정치에 이용되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명리학이 무속에 의해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명리학자는 "역학은 5000년 가까이 내려오는 동양학문이자 자연학문"이라며 "요즘 논란이 되는 건진법사, 천공 등은 역학이 아니라 차라리 무당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 속셈을 가지고 명리학을 변질시키는 사이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명리학 '조언·상담의 영역'…'국익' 아닌 '개인 출세'에 악용

관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역술인의 도움을 구하는 건 오랜 관습이다. 조선 시대 때는 명리학을 연구하는 관청인 '관상감'을 두고 천문, 지리, 역법 등을 담당하게 했다. 과거 시험에서 명리학 전공을 따로 뽑기도 했다. 명리학이 제도권 내에서 인정받는 학문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극히 보조적인 역할에 그쳐야 할 명리학이 국정 운영까지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속 신앙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 내내 끊이지 않았던 '무속 비선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계엄 사태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동양철학 전문가인 김동완 미래융합교육원 교수는 "원래 명리학은 조언과 상담의 영역"이라며 "자꾸 족집게처럼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미신의 성격이 짙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무속이든 역학이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데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지금은 개인의 이익과 출세에 이용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근본적으로는 비과학적 신념이 국정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후진적인 정치 문화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무속 논란이 계속되는 건 어떤 정치이론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라며 "굳이 따지자면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cym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