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남자 친구가 언니까지 죽였습니다" 아버지가 국민청원 글
7층, 12층 아파트서 4시간 차이로 죽임당해…일주일 방치 [사건속 오늘]
자매 살아있는 척 위장 메시지, 외제차 훔쳐 도주…"싸우다 우발적" 주장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딸의 남자 친구가 제 딸과 언니인 제 큰딸까지 살해했습니다."
2020년 12월 23일,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두 딸을 잃은 아버지의 글이 올라와 폭발적인 공분을 샀다. 한 맺힌 아버지의 절규에 청원은 순식간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와대 답변 기준을 충족했다.
아버지는 가해자의 신상 공개와 사형 선고를 촉구했으나, 가해자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기징역'이었다.
6개월 전, 충남 당진시의 한 아파트에서 4시간 간격으로 차례대로 살해된 친자매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지난 2020년 6월 25일 오후 10시 30분쯤, 26일 오전 2시 10분쯤 당진의 한 아파트 7층과 12층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7층에선 나금주 씨(당시 40·동생), 12층에서는 금주 씨의 친언니 나정은 씨(41)가 숨져 있었다. 두 사람은 살해당한 지 6일 만에야 시체로 발견됐다. 7월 1일 자매의 지인이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자매는 똑같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상태로 숨졌고, 일주일이나 방치돼 있던 탓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경찰은 동생 금주 씨가 결혼 전제로 동거 중인 남자 친구 김 모 씨(33)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해 신고받은 다음 날 바로 긴급 체포했다.
자매의 아버지가 올린 국민 청원에 따르면 김 씨는 만취해 잠든 금주 씨의 배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정은 씨를 살해하기 위해 12층으로 올라가 작은 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뒤 그 방에서 정은 씨가 오기만을 숨어서 기다렸다.
이후 새벽 2시 일을 마치고 귀가한 정은 씨가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서 나오자마자 뒤에서 덮치고 안방으로 끌고 가 침대에 눕혀 억압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
김 씨는 "금주 씨와 술을 마시고 다투다 술김에 우발적으로 그랬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사체는 부패로 인해 정확한 부검이 불가능해 사인 불명이었다.
하지만 김 씨가 범행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 위층에 사는 정은 씨 집에 침입해 2시간 동안 숨어 있다가 이튿날 새벽 퇴근하고 돌아온 정은 씨를 살해한 점은 '우발적 범행'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자매는 고향 부산을 떠나 언니 정은 씨가 당진으로 올라와 가게를 운영하며 먼저 자리를 잡았다. 정은 씨는 장사 수완이 좋아 외제 차를 살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고.
2020년 2월, 알코올 의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 금주 씨는 공황장애로 입원한 김 씨를 처음 만나 병원 안에서 사랑을 키워갔다. 두 사람은 퇴원 후 금주 씨 집에서 동거했다.
금주 씨는 김 씨와 만난 지 약 4개월 만에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범행 직후 김 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금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김 씨는 금주 씨를 살해한 뒤 정은 씨가 몰던 외제 차를 검색했다. 뒤이어 정은 씨도 살해하고선 휴대전화, 카드 등 금품을 모두 챙기고 외제 차를 훔쳐 도주했다.
이후 그는 울산에 사는 옛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당진에서 울산까지 340㎞를 무면허 상태로 운전했고, 미숙한 운전 실력에 주택가 골목길에서 사고를 냈다.
차에서 내린 김 씨는 명품 가방만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 해당 명품 가방은 전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훔친 정은 씨 돈은 유흥비로 전부 탕진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피 중 자매의 휴대전화로 106만 7000원어치의 게임 소액결제를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씨가 금주 씨를 살해한 건 우발적이라고 해도, 최소한 정은 씨에 대해서는 계획적으로 살인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김 씨는 당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그는 자매의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아 자매가 살아있는 듯 위장해 시간을 벌고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김 씨는 금주 씨의 휴대전화로 정은 씨가 운영하던 가게 직원에게 "가게 비밀번호가 뭐냐"고 물었고, 정은 씨의 휴대전화로는 이 직원에게 "동생한테 가게 비밀번호 좀 가르쳐줘라"라고 보냈다가 덜미를 잡혔다.
김 씨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3번의 절도죄 전과가 있었다. 김 씨 친동생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 가출한 뒤 수중에 돈이 없어 차량 털이를 했다고. 이에 동생은 김 씨의 절도를 막으려 돈을 빌려줬다고 한다.
또 김 씨는 술을 마시고 폭행한 전력도 있었는데, 면죄부를 받으려 119에 신고한 뒤 자해한 일도 있었다고. 그는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과 이력 등을 미리 남겨두면 감형받는다는 점을 이용하려고 했다.
자매의 아버지는 국민 청원에서 "유일한 자식인 두 딸이 비통하게 살해당했다. 그놈이 제 딸의 휴대전화로 가족과 지인에게 딸인 척 문자나 카톡에 답장했고, 범인에게 속아 두 딸의 시체는 한참이 지나서 발견됐다"며 "저는 제 딸을 온전히 안을 수도 없이 구더기 들끓고 썩어 부패한 후에 만날 수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 범죄자는 이미 절도, 강도 3범에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절도)으로 불구속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범죄자였다"라며 "제 딸에게 이 사실을 숨긴 채 접근했고, 제 딸은 어느 연인이나 싸울 수 있는 다툼을 했을 뿐인데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 딸들을 죽인 놈이 심신미약과 반성문을 계속 제출해 어떻게 해서든 형량을 줄이기 위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며 "왜 이런 흉악한 강도 살인자는 신상 공개를 안 해주시는 건지, 처음부터 강도 전과가 있을 때 더 강력한 처벌을 주고 관리를 해왔더라면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지 않았겠냐"고 분노했다.
아버지는 "제 하루하루는 지옥이다. 제가 지금 살아있는 건 단지 범죄자가 사형선고를 받는 거다. 제 인생은 두 딸이 무참히 살해당했을 때, 산산조각 났다.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봐야, 하늘에 가서도 두 딸 얼굴을 볼 면목이라도 생길 것 같다"고 호소했다.
2021년 1월 20일, 1심 재판부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검찰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 청구에 대해서는 "재범 우려가 있다는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이날 방청석에서 공판을 지켜본 아버지는 "저 사람을 살려 주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지금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느냐"며 "우리 가족을 짓밟은 사람을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살게 하겠다는 거냐"고 절규했다.
1심 재판 때 반성문만 18번 제출했으나 유족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김 씨는 형이 과하다는 이유로, 검사 측도 형이 적다는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하였다.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 변론에서 김 씨는 "어떤 변명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피해자들에게 죄송하고 사죄드린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받아도 마땅하다"라고 답했다.
김 씨는 1심부터 항소심까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의 정신감정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하며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를 각각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동시에 김 씨에게 2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결국 김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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