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회장' 꿈 못이룬 학생이 여대에서 느낀 것[기자의 눈]
동덕여대 사태가 던진 질문 '여대란 무엇일까'
- 남해인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지난해 서울의 한 여대를 졸업한 이 모 씨(27)는 초중고 내내 반장을 맡았다. 그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개학을 일주일쯤 앞두면 반장 선거에서 할 연설을 준비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교 전체를 아우르는 전교 회장 선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했다.
"당연히 회장이 하고 싶었죠. 그런데 눈치가 보였어요." 초중고 반장, 전교 부회장만 한 그에게 전교 회장이란 단어는 씁쓸함 그 자체다. 전교 회장·부회장 후보가 한 팀인 러닝메이트제 학교에 다닌 그는 '남자는 회장, 여자는 부회장'인 암묵적 관행을 깨기 어려웠다. "담임선생님마저 남자가 회장을 맡는 게 유리하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여자가 회장이 된 적은 역대 딱 두 번밖에 없다고 하시면서요."
여대 진학 후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생겼다. '성별'에 따른 고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과 대표든 총학생회장이든 여학생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남들에게 '드센 여자애'로 인식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2년차 직장인인 이 씨는 "성차별 장애물이 없는 사회는 아직 여대 외에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하는 학생과 대학 본부 사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건물 점거 농성, 항의성 래커칠, 수업 거부도 벌어지며 학생들의 시위 양상이 격화하다 대학 측이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대학이 남녀공학 전환 방침을 완전히 철회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번 동덕여대 사태는 대학 내부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여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과거 가부장제에 묶여 교육에서 배제된 여성에게 교육권을 보장하고자 했던 여대 설립 취지가 교육권이 평등하게 보장된 현재와 맞지 않는다는 '여대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남학생들은 남성이 차별받고 여성이 강자라며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젠더 갈등은 '여대란 무엇인가'란 질문 자체를 뭉개는 불필요한 현상이다. 여대에 허점이나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억눌린 여학생이 차별적인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여대가 해방구 역할을 해 왔던 것은 분명하다. '여성학' '여성과 법'을 비롯해 노동 환경과 인권을 다루는 '인권윤리학' 수업 등으로 학생들이 차별과 불공정을 민감하게 인식하도록 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태에 처음으로 불을 지핀 것도 '엄마 찬스'라는 불공정에 분노한 여대생이었다.
여대를 폐지하려면 대학과 사회는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있는가.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성이란 이유로 제한적인 역할을 맡거나 더 큰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닌가. "ㄷ여대 출신은 며느리 삼고 싶지 않다"는 한 공공기관장의 차별적인 말은 역설적으로 여대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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