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견기질평가 통과한 핏불 보호자…"결과통지서 받고 허탈"[펫피플]
[인터뷰] 핏불테리어 보호자 강슬기 씨
사전 교육 및 평가 통과시 혜택 등 제안
- 한송아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서울 송파구에 사는 강슬기 씨의 반려견 리듬이는 국내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지정된 핏불테리어다. 하지만 맹견이란 사람들의 인식과는 거리가 먼 별명을 가졌다. 슬기 씨의 다른 반려견인 소형견 3마리에게 꼼짝 못 해 '집안 서열 꼴찌' 혹은 '핏불계 보살'이라고 불린다.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만난 리듬이는 낯선 사람에게도 살가웠다.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온몸을 이용해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동석한 다른 강아지를 만지면 자기를 만지라고 손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10년 전 슬기 씨의 친구가 가족의 반대로 파양해 지금껏 맡아 키우고 있다는 리듬이는 지난 9월 정부가 시행하는 맹견기질평가제에도 당당히 통과했다.
올해 4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라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맹견으로 지정된 5종을 사육하려는 자는 동물등록, 보험 가입, 중성화 수술을 완료한 후 사육허가를 받아야 한다. 맹견기질평가도 필수다.
기질평가는 입마개를 착용시키는 것부터 낯선 사람과 다른 개를 만날 때 공격성을 보이는지, 블라인드 뒤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택배 상자를 떨어트리거나 우산을 펼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본다.
당초 지난 10월 26일까지 사육허가를 받게 돼 있었지만, 참여 저조로 정부는 1년간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직접 기질평가를 받고 통과한 보호자로서 슬기 씨에게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보완할 점이나 참여 독려를 위한 방법 등 의견을 들었다.
"저는 개체별 특성이 아닌 특정 견종이란 이유만으로 맹견으로 낙인찍는 법과 제도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맹견 사육허가제를 시행한다는 발표가 꽤 반가웠어요."
핏불테리어는 다른 견종에 비해 많은 운동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슬기 씨와 리듬이는 단지 거리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받고 욕설을 들어 평범한 산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10년간 점차 맹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본래 출입이 가능하던 반려견 운동장(놀이터) 출입도 금지됐다.
"한국 사회에서 리듬이처럼 기본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동물이 더 생기지 않게 키우기 어렵게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맹견기질평가에 통과하면 정부가 제시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인정받은 개로 당당히 다닐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죠."
슬기 씨는 10년 넘는 세월 리듬이를 잘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반려동물 교육에 대해 공부하다 깊은 관심이 생겨 결국 직업도 바꿨다. 반려견 피트니스 전문 훈련사로 리듬이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반려견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로서 그는 "맹견기질평가에 통과하기까지 절차가 그리 간단하지 않아 음지에서 몰래 키우는 분들들이 생길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맹견사육허가를 받으려면 동물등록증, 중성화 수술 증명서, 맹견책임보험 가입서, 정신질환자나 마약류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의사의 진단서를 구비해 신청해야 한다. 신청 후 기질 평가에도 비용을 내야 한다.
"개인 시험 부담액 25만원에 각종 서류 발급비용까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떨어지면 비용을 또 내야 하니 평가를 받기 위한 교육 부담도 크고요."
평가 당일 반려견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슬기 씨조차 시험이라 많이 긴장했다. 개들은 기계가 아니기에 때에 따라 달리 반응할 수 있고 현장에서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가 당일 시험에 떨어진 보호자도 있었다.
"정부에서 보호자가 반려견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사전에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였습니다. 보호자들을 만나보면 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분들도 많거든요. 개의 기질보다 중요한 건 보호자의 컨트롤 능력이기 때문에, 사전 교육부터 시험에 떨어졌거나 혹은 추가 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한 번 시험 볼 때 적지 않은 비용이 드니까요."
슬기 씨는 평가에 통과한 사람들을 위한 혜택이 마련되면 유인책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전했다. 현재 평가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반려견으로 잘 키우려고 등록하고 키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끝에 평가에 통과했어도 메일로 달랑 결과 통지서만 날아온 것을 보며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고.
"독일처럼 기질평가에 통과한 개는 입마개 착용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거나 최소한 정부에서 관리하는 동반가능 장소, 반려동물 축제에 출입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지자체가 바로 집 앞에서 개최하는 축제에도 핏불이란 이유만으로 참가할 수 없거든요."
그는 앞으로 맹견 개체수와 등록조차 되지 않은 사각지대에 있는 개들의 관리에도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키우는 사람들이 아무리 중성화수술을 하고 키워도, 한쪽에서 계속 맹견이 생산된다면 안전관리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까요? 번식업자나 투견이나 사냥견 등의 목적으로 맹견을 몰래 생산하는 자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번식 제한, 집중 단속 등으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해피펫]
badook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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