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사' 오재원에게, 12년 팬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기자의 눈]
- 남해인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중학교 3학년 시절 쉽게 위축되곤 했다. 학생회장 등 내심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주목받는 것이 두려워 잔뜩 웅크리고 지냈다. 동급생에게 눈총을 받으면 늦은 밤 홀로 거리를 배회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집에서 TV로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눈매가 매서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의 소속은 두산베어스였고 이름은 오재원이었다. 투수의 손에서 벗어난 공은 오재원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다. 잽싸게 몸을 젖혀 공을 피한 오재원은 팔을 휘저으며 투수에게 항의했다.
화면을 통해 바라본 풍경이지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투수는 다시 공을 던졌고 오재원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탕.'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공은 '안타'로 기록됐다. 오재원은 1루를 돌아 2루 베이스까지 밟았다. 위협적이었던 투구에 주눅 들지 않고 기어이 공을 때려낸 뒤 목표를 향해 질주하던 그의 집념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후 오재원의 열성 팬이 됐다. 그의 '허슬 플레이'(운동선수가 몸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경기함)에 마음이 벅차오르고 대리 만족을 했다. 오재원처럼 과감해지고 싶었고 활력을 보이고 싶었다. 사춘기 시절 축 늘어져 있던 마음은 오재원을 응원하면서 어느덧 기지개를 활짝 켰다.
그 후 12년간 오재원은 도루왕을 하고 팀 주장을 하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에 팬들은 '오열사'라는 별명을 지어 화답했다. 현역 시절 그는 팬들에게 진심이었다. 소속팀인 두산이 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패했지만 경기장 밖 남은 팬들을 위해 끝까지 사인해 줄 정도였다.
2022년 10월 8일 휴대전화로 오재원의 은퇴식을 보며 아낌없이 박수쳤다. 사춘기 시절 우상이 야구가 아닌 다른 삶에서도 성공하고 행복하길 응원했다. 그해 기자 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힘들 때마다 불굴의 집념으로 질주하던 오재원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올해 6월 사회부 사건팀으로 배치돼 '피의자' 오재원을 마주했다. 오재원은 지난 10일 마약 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마약을 투약하고 이를 신고하려는 지인까지 협박한 혐의로 이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를 다루는 기사 제목에는 '국가대표' '야구선수' '오열사' 대신 '마약'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를 응원했던 팬들에겐 추억마저 빼앗은 잔인한 현실이다. 오재원은 대체 왜 그랬을까. 아니 원래 그랬던 사람이었던 걸까. 이런 사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사회부 기자로서 그의 혐의 유무와 처벌 수위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공인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예상보다 크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사춘기 학생이 오재원의 활약을 보며 용기를 얻고 세상과 부딪혀보리라 다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경기장을 떠나는 선수들이 꼭 기억했으면 한다. 경기장 밖에서도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것을. 수많은 유혹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해야 자신과 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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