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14㎏ 뺀 약"…'뼈말라' 10대들 '위고비' 불법거래 우려
꿈의 비만약 '위고비' 국내 상륙…청소년 처방 불가능하지만
다이어트 광고 판치는 SNS…"약 대부분 릴스서 보고 구매"
- 홍유진 기자
다들 다이어트 강박이 엄청 심해요. 급식 대신 샐러드 싸 오는 건 기본이고, 알음알음 처방 약까지 구해서 먹는 친구들도 있어요.
(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부산에 사는 고등학생 정 모 양(18)은 최근 국내에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출시됐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았다. 정 양은 "강박이 심한 친구는 효과만 좋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을 구하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국내에 상륙하자마자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약물 오남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비만치료제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위고비 처방이 허용되지 않는 10대 청소년들의 불법 거래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22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비만치료제를 중고로 사고파는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X(옛 트위터)에 '삭센다 미개봉'을 검색하자 '삭센다 미개봉 1팩 9만 원에 양도합니다' '냉장보관했는데 안 맞아서 팔아요' 등 관련 게시글이 수두룩했다.
삭센다와 비슷한 계통인 위고비는 같은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치료제로 지난 15일 국내에 출시됐다. 펜 모양 주사를 주 1회, 1개월씩 투여하도록 제조됐다. 일론 머스크, 킴 카다시안 등 해외 유명인들이 위고비로 체중을 감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고비는 주 1회 주사만으로 쉽게 감량할 수 있는 '꿈의 비만약'으로 불리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위고비는 국내에서 성인 비만 환자에게만 합법적으로 제공될 수 있다. 위고비를 처방받기 위해선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등 동반 질환이 있어야 한다. 단순 다이어트약이 아닌 전문 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다.
아직 국내에선 소아·청소년 대상 처방은 불가능하다. 노보노디스크가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국내 처방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위고비가 비교적 일찍 도입된 미국의 경우 12세 이상 어린이부터 처방이 가능하다.
문제는 위고비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비만인이 아닌 사람도 처방받거나, 온라인에서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위고비가 국내 출시된 지난 15일부터 일주일간 관련 위반 게시물은 12건이나 적발됐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다이어트약 관련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청소년들의 오남용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비롯해 10대들이 활발하게 사용하는 SNS에 다이어트약 후기 글이 쏟아지고 있다.
틱톡에는 '일론 머스크가 14㎏ 뺐다는 약' 등 위고비 소개 영상뿐 아니라, 직접 배에 주사를 찌르며 감량 전후 몸매를 공개하는 후기 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 팔로워 11만 명의 한 인플루언서는 "위고비를 구했다. 키 171㎝ 55㎏으로 시작해, 1주일 뒤 몸무게를 공개하겠다"는 홍보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미의 기준이 '마름'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 '프로아나(자발적 거식증)'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최근 10대 섭식장애 환자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 양은 "아이돌, 인플루언서처럼 전부 예쁘고 마른 사람들만 SNS에서 보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다"며 "다이어트약이나 붓기 제거제들도 릴스(숏폼 영상)에 광고 뜨는 걸 보고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이 위고비 열풍과 맞물리면서 청소년들이 '어둠의 경로'로 다이어트 치료제에 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다. 국내에서는 청소년 대상 위고비 처방이 불가능한 탓에 온라인 중고 거래, 개인 간 거래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성장기 청소년일수록 비만치료제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허양임 대한비만학회 홍보이사는 "위고비는 체중 감량 폭이 큰 약이기 때문에 정상 체중인 성인들조차 의사의 모니터링 없이 쓸 수 있는 약이 아니다"라며 "청소년기에는 성장장애, 영양결핍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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