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드롬'에 동네 책방 재발견…"한 번 아닌 모두의 파도 되길"

대형서점서 한강 책 품절되자 독립서점으로 눈 돌려
"독자 취향에 맞게 추천·소개하는 게 독립서점 매력"

지난 13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대표로 있는 서울 종로구 독립서점 '책방오늘'을 찾은 시민들이 문 닫힌 서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한강 작가 책 찾는 전화는 30통 정도 왔고요. 인스타그램 DM(메시지), 직접 오셔서 찾은 분까지 더하면 대략 100분은 한강 작가의 책이 있는지 물으셨어요."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16일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서 5년째 독립서점 '주책공사'를 운영하는 이성갑 씨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 작가의 책을 찾는 손님들로 활기를 찾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들에서 한강 작가의 책들이 완판되자 일부 독자들이 재고가 남아있을지 모를 독립서점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동네 책방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기면서도 한강 작가의 책 확보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속을 태우는 실정이다.

평소 대형서점에서 경제 서적 등 비문학 책만 구매해 왔다는 직장인 문지우 씨(29)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책을 구하러 처음으로 서울의 한 독립서점에 다녀왔다.

문 씨는 "학창 시절부터 문학을 싫어해서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한강 책으로 입문해 보고 싶어 책을 찾으러 다녔다"며 "한강 책은 구할 수 없었지만, 서점원과 책 취향에 관해 대화하며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골라왔다"고 말했다.

또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 오늘'이 주목받으면서 대중이 독립서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도 계기였다.

인천에 거주하는 심 모 씨(52)는 "딸이 한강 노벨상 수상 소식 이후 문학에 관심을 보이는 중에 한강 작가의 책방에 관한 기사도 접하게 돼 '책방이란 곳에 가보자'고 했다. 서점 외에 책방을 찾을 생각은 못 해봤는데 이 이번 기회에 수십 년 만에 다시 가봤다"고 말했다.

'한강 신드롬'으로 새삼스레 관심을 받게 된 독립서점들의 매력은 수만 권의 책들 속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대형서점과 달리, 서점원과의 대화와 추천을 바탕으로 책이 먼저 독자에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에서 문을 연 지 5년째인 독립서점 '소리소문' 운영자 정 모 씨는 "대형 서점은 종류나 다양성에서 큰 강점을 가졌지만 개별 독자의 취향에 맞게 책을 고를 수 있는 '큐레이션'(추천·선정)은 부족할 것 같다"며 "책방에선 서점원이 이전에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이 좋았는지 물어보고 답변을 토대로 책을 추천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15일 한 시민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독립서점 사장들은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책이 다시 대중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한강 책을 구하려고 책방에 전화해 보고, 가보고 하는 게 중요한 하나의 파동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현상이 한 번의 파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에 파도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을 만한 많은 책을 열심히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번을 계기로 꼭 한강 작가의 책이 아니더라도, 평소 작은 책방에 오셔서 본인에게 맞는 책을 먼저 읽어보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그러다 한강 작가의 책에도 접근해 보고 하면서 독자들이 훨씬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독립서점 사장들은 독서에 대한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사정이 있다. 인쇄소, 출판사, 대형 서점이 누리는 '한강 특수'를 당분간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유통 구조상 구매력이 막강한 대형 서점들에 밀려 독립서점들은 추가 재고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씨는 "대부분 손님이 한강의 특정 책을 말씀하시지 않고 일단 '한강 책'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면서도 "추가 재고를 확보할 방법은 아직 없고 언제쯤 확보할 수 있을지도 물류센터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기뻐할 일이지만 한편으론 슬프다"며 "한강 작가의 책은 거의 인터넷 서점 업체로만 가서 독립서점들은 물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10만 부를 찍었다면 그중 100부를 독립서점들이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