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강 작품들이 취향이 아니라고요?"[이승환의 노캡]

봉준호·BTS 이후 한강의 노벨상 바라보는 시선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서울야외도서관 광화문책마당'을 찾은 시민들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다.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에 대한 관심과 독서를 '힙하게' 여기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가 맞물려 대한민국 곳곳에 독서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24.10.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10일 밤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한강 노벨상' 속보 알림이 뜨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실화냐. 국가적 경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성취를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은 역대 두 번째로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2020년)과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2019년)을 모두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내 주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살펴보면 한 가지 반응이 눈에 띈다. '노벨상 수상은 경사지만 한강의 모든 작품이 내 취향인 것은 아니다'는 이가 예상보다 적지 않다. 한강의 책을 한 권이라도 구매해 읽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벨문학상을 평가절하하지 않되 한강의 '일부' 작품과 관련해 물음표를 붙인다. 고백하면 기자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다만 이런 속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가 '왜 잔칫집에 재를 뿌리려 하느냐'는 따가운 지적과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제주 4·3(작별하지 않는다)과 광주 5·18(소년이 온다)을 소재로 집필한 한강의 작품을 역사 왜곡이라며 비난하는 이들까지 곱게 보기는 힘들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한참 응시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다가 끝끝내 울음을 참으며 살아남은 자들을 어루만지는 한강의 손길이 역사의 큰 줄기를 비틀었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념의 잣대로 예술을 논하는 것은 좌든 우든 '촌스러운 것'이 됐다. 정치적으로 보수이면서 진보적인 작품을 쓴 발자크가 그랬듯 작가는 때론 자신의 이념과 반대되는 작품을 쓴다. 엥겔스는 이를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명명했다. 우파 소설가 이문열이 정교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독재 권력을 비판한 우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리얼리즘 승리'의 좋은 예이다.

다만 이와 별개로 작품 자체 평가는 독자 각자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한강의 소설을 읽은 것은 2005년이었다.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작이었던 '몽고반점'이었다. 이 작품은 2019년 영국 최고 문학상 맨부커상을 한강에게 안겨준 '채식주의자' 3부작 중 하나다. 몽고반점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한동안 작가의 내면을 상상했다. 유리잔처럼 날카롭고 섬세한 문체가 한강 작가의 내면을 치환한 게 아닐까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인생 소설이라고 소개하지는 않는다. 처제에 대한 형부의 욕망 등 금기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금기를 글감으로 삼은 고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롤리타' 등 수두룩하다. 몽고반점은 집요할 정도로 탐미적인 시선으로 몸에 대한 원초적 욕망에 천착하면서 꾹꾹 눌러쓴 예술가 소설의 전형이다. 당시도, 지금도 심미안이 부족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다만 나의 문학적 취향은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5년 전 기생충의 성취 때와 비교해도 '취향'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한강 특유의 난해한 작품 성향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배경이 있다. 기생충 이후 5년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한국 문화 예술인이 세계 최고봉에 오르는 사례가 아주 흔하지 않았지만 드물지 않았다.

요컨대 방탄소년단(BTS)은 2021년 타이틀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2022년)에는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같은 해 블랙핑크는 케이(K)팝 걸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요즘 '대세'라는 뉴진스의 주무대도 한국이 아닌 '세계'이다.

영화와 소설, 케이팝은 다르다고 반문할 수 있겠다. 빌보드 1위를 노벨상과 견줄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떠올려 보시라. 미국이나 일본의 음악을 모범 답안처럼 떠받들던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 가수의 빌보드 1위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영영 닿지 못하는 신기루 같았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인들은 자국 문화 예술인들의 최고가 된 순간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더는 '국뽕'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 결과 노벨상의 권위에 다소 눈치는 보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취향과 소신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만일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기생충 이전에, BTS 이전에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현재 기준으론 성 착취물에 가까운 작품인데도 해외에서 수상하면 심오한 예술로 추앙받던 1990년대에 한강이 노벨상을 받았다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해 이견조차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도 시민들이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이 문화 예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