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하자" 직원 4명이 사장 유인 살해…11년후 말기암 걸리자 자백
월급 미루고 도박빚 독촉에 앙심, 산 중턱 암매장 은폐[사건속 오늘]
시신 발견 못하고 자백 8일후 사망…법원 "신빙성 높다" 모두 실형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강원도 평창에서 사채업을 하던 강 모 씨(1953년생)가 2000년 10월 어느 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이 백방으로 찾아 나섰고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지만 그를 봤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11년 가까이 흐른 2011년 2월 강 사장 밑에서 경비반장으로 일했던 양 모 씨(1952년생)가 강 사장의 형을 찾아와 "동생 시신이라도 보고 싶다면 돈을 달라. 그러면 동생이 묻혀 있는 곳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깜짝 놀란 형은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미제 사건으로 남겨 놓았던 경찰은 2011년 4월 초 양 씨를 불러 사건 경위를 캐물었다.
위암 말기로 뼈만 남아 있던 양 씨는 "회사 후배들과 함께 강 사장을 죽인 뒤 밤을 이용해 회사 인근 ○○○산 중턱, XX 바위 밑에 암매장했다. 지금 그 죗값을 받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며 1시간여 동안 범행 일체를 상세하게 자백했다.
그가 지목한 회사 후배는 A(1963년생), B(1965년생), C(1954년생)였다.
양 씨와 이들은 강 사장이 월급도 제때 주지 않는 데다 자신들에게 '도박 빚을 빨리 갚아라'고 독촉하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술이나 한잔하자'며 강 사장을 불러 술에 취하게 한 뒤 둔기로 때려 쓰러뜨린 뒤 발로 짓밟아 숨지게 했다.
11년 전 자신의 죄를 고백한 양 씨는 자백 8일 뒤 숨을 거뒀다.
경찰은 양 씨가 말한 ○○○산, XX 바위 인근을 샅샅이 훑었지만 유골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검찰은 양 씨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 4명 모두 범행 동기가 있는 점, 숨지기 직전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이들을 살인 및 사체 유기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 재판의 쟁점은 죽은 자의 자백뿐인 상태에서 살인죄를 물을 수 있느냐였다.
특히 A, B, C는 재판 내내 "양 씨의 단독 범행이었다"며 "선배의 강요에 못 이겨 시신을 옮기고 묻는 일을 도와줬을 뿐이다"고 주장한 것도 골치 아팠다.
사체 유기의 경우 공소시효가 7년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성립돼 사체 유기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신 없는 살인사건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9명은 2011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무려 30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법정 공방을 지켜봤다.
그 결과 9명의 시민 배심원단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 유죄' 판단을 내렸다.
배심원들은 "피고인들은 피해자를 극히 증오했고 도박 등으로 빚을 진 정황 등으로 미뤄 강 씨 살해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검찰 의견을 지지했다.
검찰이 무기징역형을 구형한 가운데 배심원 3명은 징역 15년, 2명은 징역 14년, 3명은 징역 13년, 1명은 징역 12년형을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설범식)는 2011년 12월 2일 선고공판에서 "A와 B는 범행 하루 전까지 양 씨와 범죄를 공모한 점, 범행 당시 피해자의 팔을 붙잡고 있었던 점, 피해자 생사를 확인하려 하지 않은 점,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살인에 가담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이어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유족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고 피고들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엄벌에 처함이 마땅하다"며 A, B에게 각각 징역 15년형을 내렸다.
하지만 C에 대해선 "자백의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고 제출된 증거만으로 범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을 즉각 항소했다.
2012년 5월 25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조경란)는 A, B는 물론이고 C도 살인에 가담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A와 B에 대해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 사체를 찾아주는 조건으로 유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점, 화재보험금을 노리고 공장에 불을 지르려고 계획하는 등 범행 후 행적도 매우 악하다"며 1심의 징역 15년 형을 유지했다.
C에겐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한 것은 뇌출혈, 뇌경색 등으로 인한 기억의 혼동 때문이다"며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백한 것으로 봐 신빙성이 있다"라며 1심과 달리 유죄 판단을 내렸다.
다만 가담 정도가 A, B와 달리 약한 점을 고려해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나란히 상고했지만 A와 B는 2012년 8월 17일, C는 같은 해 8월 23일 대법원에 의해 "원심 판단의 잘못이 없다"며 형을 확정받았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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