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생 키 175 MBTI E, 90~96년생 여성 원함"…2030 '셀소' 열풍

온라인 커뮤니티서 '셀프 소개팅' 글 유행
전문가 "효율성 추구하는 세대 특성 반영"…"범죄 악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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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자기소개】 나이 93년생. 남성. 키 175. 몸무게 67. 경기 북부 위치한 사기업 다니며 근처 거주 중. ESTP. 취미는 테니스. 흡연 X 음주 O.

【원하는 상대】 나이 90~96년생. 여성. 키 160~165. 위치는 수도권. 흡연 안 하시는 분. 결혼과 육아를 전제로 하고 계신 분.

대학생과 직장인이 주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같은 셀프 소개팅(이하 '셀소')이 유행하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원하는 상대방 조건을 명시하면 관심 있는 사람이 연락해 만남이 성사된다.

게시글에는 작성자의 나이, 성별, 키와 몸무게, 직업 등 기본 인적 사항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에 이르는 자기소개가 담긴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의 조건도 자세하게 포함된 경우도 많다.

1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2030 세대에서 이런 셀소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근 일주일 사이 서울 모 대학 플랫폼에는 셀소 글만 총 15개가 올라왔다. 각 글의 조회수는 500~1000회, 댓글은 10개 이상으로 셀소 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글을 본 사람 중 마음에 드는 이가 게시글에 댓글을 달거나 작성자가 올린 오픈채팅방 링크로 들어가면 1:1 대화가 시작된다. 이후 사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다 각자의 사진을 공유한 뒤 서로 마음에 들면 대면 약속을 잡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런 셀소 문화는 코로나 시기 직접 사람을 만날 통로가 부족해지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코로나가 사실상 종식된 지금도 셀소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시간·돈·감정 절약할 수 있어 좋아요"

2030 세대가 꼽는 셀소의 첫 번째 장점은 효율성이다. 대학원생 박승윤 씨(25·남)는 "저는 물론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 기준에 맞는 사람 아니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연애를 하려면 돈도 꽤 들고 혼자서 즐길 수 있는 행복도 포기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감수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고 밝혔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 혼자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굳이 타인과의 불확실한 관계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 셀소는 서로 대략적인 조건이 파악된 상태에서 만남을 시작할 수 있고 눈치 볼 주선자도 없어 빠르고 간편한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주선 업체나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은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반면 셀소는 부담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2년 차 직장인 최승현 씨(28·여)는 "직장에 들어온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결혼정보업체도 알아봤는데 너무 비쌌다"며 "같은 학교나 직장끼리 모인 커뮤니티라면 최소한 신원 보장이 되고 돈도 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셀프 분석' 트렌드도 반영돼

셀소 문화는 '셀프 분석'을 즐기는 2030 세대의 특성이 반영돼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MBTI 검사(개인의 성격 유형을 분석한 검사)와 퍼스널 컬러 검사(개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분석한 검사) 등 스스로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이 유행이다.

실제로 여러 셀소 글에는 작성자의 MBTI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상대의 MBTI가 기재돼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MBTI 검사나 퍼스널 컬러 검사 등 각종 검사를 통해 스스로를 분석하고 특정 프레임으로 정립하려고 하는 것은 요즘 2030의 특성"이라며 "이게 자신뿐 아니라 상대를 만날 때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 바로 셀소 문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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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딥페이크 등 범죄 악용 가능성

셀소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여성들은 셀소 과정에서 공유된 자신의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고 셀소에 한번 도전해 봤다는 20대 여성 A 씨는 "내 신상정보와 사진까지 다 공유했는데 갑자기 상대가 아무 말도 없이 메시지 방을 나가서 당황스러웠다"며 "요새 딥페이크 뉴스가 하도 많이 나오다 보니 실제로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내 사진을 보낸 게 너무 경솔했나 뒤늦게 후회가 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피해는 집계를 시작한 올해 2월 66건을 시작으로 4월에 139건, 7월에는 163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에 접수된 허위 영상물 등 범죄 관련 발생 건수는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에 이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297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연애의 스펙화' 우려

일각에선 셀소 문화가 연애의 조건화를 강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한 번도 셀소를 해보지 않았다는 30대 남성 B 씨는 "나도 한번 글을 올려보고 싶었는데 다른 글들을 보니 대부분 좋은 직장에 큰 키를 자랑하더라"며 "내 소개를 쓰다가 너무 비교된다는 생각에 우울해져 글을 결국 올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능력주의를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이 연애에도 적용되곤 한다"며 "셀소는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여러 조건을 보고 만남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주객전도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