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못해 죄송" 딸이 단 댓글…달리던 치킨집 가장 음주차에 참변

"마지막 배달인데"…을왕리 도로서 만취남녀 역주행[사건속 오늘]
가해자들 "6억까지는 줄 수 있다" 뻔뻔 태도에 유족 "엄벌" 호소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20년 9월 9일, 음주 운전 동승자에게도 '윤창호법'이 처음으로 적용될 만큼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던 50대 가장을 덮친 '음주 운전 사망사건'이다. 사고 직후 "누가 역주행했냐?"고 따지며 변호사한테 연락한 가해 남녀의 뻔뻔함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영문도 모른 채 치킨을 배달받지 못한 손님의 리뷰엔 "아버지가 참변을 당했다"는 답글이 달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벤츠에 탑승하는 임 씨(왼쪽)와 김 씨. (JTBC 갈무리)

◇치킨 배달 나선 50대 가장…만취 남녀, 역주행해 들이받았다

이날 9시 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음주 운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가해 운전자 임 모 씨(당시 33·여)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94%로, 면허 취소 수취(0.08%)를 훨씬 넘었다. 가해 차량에는 차주인 김 모 씨(당시 47·남)가 동승한 상태였다.

임 씨가 운전한 벤츠 차량은 제한속도 시속 60㎞를 22㎞ 초과한 상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역주행했고, 마주 오던 A 씨(당시 54·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비상등을 켠 가해 차량 뒤에 쓰러져 있던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현장엔 그의 오토바이와 치킨, 차량 잔해가 나뒹굴었다.

임 씨와 김 씨의 사고 당일 행적을 살펴보니, 이들은 전날 저녁 서로 알고 지내던 다른 남녀 2명과 함께 만났다. 당시 이들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밤 9시까지 을왕리 바닷가 앞 횟집에서 1차 술자리를 가진 뒤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샀다.

네 사람은 인근 숙박업소에서 2차 술자리를 이어갔다. 4시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숙소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들 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고, 임 씨가 만취한 채 '집에 가겠다'며 숙소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임 씨는 겉보기엔 취한 것 같지 않은 걸음걸이로 벤츠 승용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고, 운전석 손잡이를 잡아당겼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시 뒤 뒤따라온 김 씨가 차량 리모컨으로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이 나란히 차에 올라타 숙소를 빠져나갔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접어든 이들은 1분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

같은 시각 A 씨가 이들이 있던 숙박업소 바로 옆 건물로 직접 치킨을 배달하러 나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SBS '비디오머그' 갈무리)

◇"아버지 참변" 리뷰 답글 '먹먹'…가해자는 변호사부터 찾았다

치킨을 기다리던 손님은 2시간 가까이 배달이 오지 않자 항의성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손님은 "배달 시간 한참 지났는데 연락은 받지도, 오지도 않았다"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늦은 시간에 못 오면 못 온다고 연락도 없고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전화는 왜 안 받는지 어이없다. 특수 지역 텃세냐. (치킨집에서 숙소까지) 거리도 300m밖에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에 A 씨의 딸이 "너무 죄송하다. 손님분 치킨 배달을 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하셨다. 치킨이 안 와서 속상하셨을 텐데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답글을 남기자, 손님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리뷰를 삭제했다.

최초 목격자는 한 매체에 "제3자 입장인데도 화가 많이 났다"며 사고 당일을 회상했다. 이들은 사고 직후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변호사에 먼저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는 "피해자(A 씨) 심폐소생술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누가 역주행했냐'고 저희 일행한테 따지듯이 물어보고 말 좀 해달라고 하더라"라며 "남자분(김 씨)이 먼저 변호사한테 전화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여자분(임 씨)을 바꿔주는데 여자분이 되게 또박또박, 당당하게 '운전 제가 했고요. 음주한 거 맞다'고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임 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이른바 '윤창호법'을 적용했다. 다만 임 씨는 조사 과정에서 몸이 좋지 않다며 귀가했으며 세 차례 병원 진료를 받고 집에 머물렀다. 이후 도주 우려가 있어 결국 구속됐다.

김 씨는 "바지 벨트가 풀어졌다"며 경찰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김 씨 역시 '윤창호법'이 적용됐고 이에 더해 음주 운전 교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차량 리모트컨트롤러로 문을 열어준 건 맞는데, 나머지는 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아빠의 마지막 배달…술에 취한 가해자는 왜 우나" 유족, 엄벌 호소

A 씨의 딸은 청와대 국민 청원을 통해 가해자들의 엄벌을 원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딸은 "그날따라 저녁부터 주문이 많아서 저녁밥도 못 드신 아버지는 '마지막 배달'이라고 하고 나가셨다"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던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는데, 가게에서 2㎞ 떨어진 곳에서 가게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있는 걸 발견했다"고 적었다.

이어 "구급차는 이미 떠났고 남겨진 구급대원에게 오로지 한 가지만 물어봤다. '의식이 있나요'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 구급대원에 어머니의 세상은 무너졌다"며 "장애가 있어도 되니까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고 토로했다.

경찰서에 출석한 딸은 임 씨가 우는 모습을 봤다며 "우리 아빠한테 미안해서인지 본인 인생이 걱정돼서인지 궁금했다. 가해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했는데, 저 멀리 오토바이 불빛이 보였고 아무 걱정 없는 아빠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저 술에 취한 상태의 가해자를 보고 싶어서 한 번만 보겠다고 했는데, 경찰이 말렸다. 경찰은 원하는 진술만 확보하고, 저는 궁금한 것을 하나도 해소하지 못했다. 경찰이 조금 미웠다"고 하소연했다.

딸은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가해자, 아니 살인자들의 목격담을 보고 왜 경찰서에서 난동을 안 피우고 나왔는지 한이 되더라. 저런 쓰레기한테 우리 아빠 죽어서 너무 불쌍했다"며 "제발 최고 형량 떨어지게 해달라. 아무리 실수여도 사람이 죽었고 우리 가족은 한순간에 파탄 났다"고 호소했다.

유족 집을 찾아온 김 씨 모습. (MBC 갈무리)

◇"합의금 낼 능력 안 되잖아"…운전자 회유한 동승자

사고를 일으킨 벤츠는 건설사 임원인 김 씨가 회사에서 받은 법인차량이었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부르자고 했는데, 김 씨가 '네가 덜 마셨으니 운전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또 임 씨는 사고 직후 김 씨가 형사 입건을 피하기 위해 지인을 통해 연락해 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씨는 술에 취해 있어 내가 음주 운전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하면, 김 씨가 피해자에 대한 합의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회유였다.

임 씨의 지인은 "동승자 김 씨 측에서 자꾸 만나자고 해서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며 "그러자 김 씨 측에서 (사고 전 함께 술을 마신) 일행 B 씨를 통해 임 씨에게 계속 연락했다"고 말했다.

B 씨는 임 씨에게 "사건을 쉽게 갈 수 있는 걸 지금 더 복잡하게 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너 합의금이 얼마가 됐던 이거(합의금) 낼 능력 안 되잖아"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동시에 "(김 씨도) 차주이기 때문에 (음주 운전 방조에 대해) 발뺌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오빠(김 씨)가 형사 입건 되면 널 못 도와준다"며 "네 형을 줄이기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다. 협조 좀 하자"고

그러나 김 씨는 "운전자(임 씨)에게 회유성 문자를 보내라고 한 적 없다"며 "대리 기사를 부르자고 했다는 임 씨의 말도 당시 술에 취해 있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윤창호법) 혐의로 입건된 임 씨(33·여). ⓒ News1

◇유족 집 찾아가 대문 '쾅쾅'…"합의금 6억 줄게" 선처 요구

김 씨가 사건 이후 유족에게 여러 차례 찾아가 합의금 6억 원을 줄 테니 선처를 호소한 사실도 밝혀졌다. 법정에서 55차례나 "기억 없다"고 답변하던 김 씨는 뒤에서는 돈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김 씨 일행은 숨진 A 씨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C 씨 가게에 찾아와 "(합의금을) 산출하면 3억 얼마 되는데 난 6억 원까지도 줄 수 있다"며 유족들과 다리를 놔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김 씨 일행은 A 씨 집 대문을 두드리며 돈을 줄 테니 합의하자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김 씨의 손해사정사가 혼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집 밖에도 잘 나가지 못하는 아내는 가해자 일행이 대문까지 두드리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유족은 김 씨 측에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김 씨 일행은 "용서해달라고 가는 거다. 오히려 죄를 (용서를) 안 비는 게 잘못된 것"이라며 법정에는 유족이 오지 않으니까 직접 찾아왔다고 해명했다.

유족 측 변호사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막상 기소돼 재판받으니까 선처를 구하려고 한다"며 분노했다.

동승자 김 씨(47). ⓒ News1

◇운전자 징역 5년…동승자는 '윤창호법' 무죄, 왜?

당초 김 씨는 음주 운전 '방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으나, 검찰은 김 씨가 임 씨의 음주 운전을 단순히 방조한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추긴 사실을 확인하고 '교사'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김 씨가 직접 문을 열어주는 등 행위가 사실상 음주 운전을 시킨 것으로 보고 이번 사고의 공범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임 씨에게 징역 10년, 김 씨에게는 징역 6년을 구형했다. 2021년 4월 1일, 인천지방법원은 임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으며 김 씨에게는 방조 혐의만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김 씨에게 적용된 윤창호법과 음주 운전 교사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음주 운전 차량에 함께 타긴 했지만, 운전자가 낸 사망 사고의 책임까지 동승자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원칙적으로 운전 중 주의의무는 운전자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임 씨 등과 검찰 측은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2021년 8월 27일, 2심에서도 검찰은 1심과 마찬가지의 형을 각각 구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며 선처를 호소하던 임 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이를 취하해 2심 형량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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